긴장 속에서 열린 터키 NATO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터키에서 긴장감 속에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열린 회의 개막 연설에서, 이번 회의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최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참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높이 평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은 트럼프의 NATO에 대한 반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NATO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양가적 태도는 NATO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미국이 없더라도 NATO라는 동맹 자체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올해 초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강조했듯이, 다극화된 세계에서는 중견국(middle powers) 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트럼프와 NATO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와 두 번째 임기 모두에서 NATO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의 관점에서 미국은 NATO 회원국들에게 안보를 보장해 주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NATO 회원국들이 기존의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한다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은 미국 내 비판론자들이 NATO의 존재 이유를 쉽게 문제 삼을 수 있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방어할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문을 제기했으며, 이번 앙카라 회의에서도 다시 한번 그린란드는 미국에 넘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유럽에서 당연히 큰 우려와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의 이란 공격 결정은 미국과 NATO 회원국들 사이의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다. 트럼프는 이란을 공격하기 전에 NATO 동맹국들과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지를 기대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유럽 국가들의 주권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유럽의 반감 때문에 NATO 회원국들은 미국을 지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부 국가는 미국의 군사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자국 기지의 사용까지 거부했다.
‘트럼프를 다루는 데 능한 인물(Trump whisperer)’로 알려진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트럼프를 달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카라에서 트럼프가 한 발언이 보여주듯 미국과 나머지 NATO 회원국들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매우 좋지 않다.
이러한 긴장은 유럽이 NATO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점에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NATO 내부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설령 미국이 유럽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이란과의 전쟁은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점차 소모시키고 있다. 따라서 NATO는 더욱 불안정해진 국제 환경 속에서 자체적인 군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 역량의 극대화
미국을 제외하면 NATO는 대부분 소국과 중견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군사력은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다른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NATO 회원국들이 미국의 지원 없이 스스로를 방어하려면 무엇보다 국내 방위산업과 무기 생산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다만 그것은 그가 기대했을 법한 것처럼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었다. 트럼프는 NATO 회원국들이 국방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끊임없이 비판했고, 이는 그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기 생산국으로서 NATO 국가들이 국방비를 늘리면 결국 미국산 무기 판매가 증가해 미국 경제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NATO 회원국들은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산 무기와 군사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러 국가들이 미국산 F-35 전투기 도입 계획을 축소하거나 아예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NATO 회원국들은 또한 자국 내 무기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NATO 국가들은 동맹 차원의 공동 군사력 요구와 자국 내 일자리 보호라는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러한 긴장은 궁극적으로 각국의 무기 및 탄약 생산 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 캐나다는 최근 캐나다군의 경량 다목적 차량(light utility vehicle) 사업 입찰에 오직 캐나다 기업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으로 두 곳의 미국 기업은 해당 사업에 입찰할 기회를 잃었다.
그러나 국내 방위산업 생산을 강화하는 것은 NATO를 강화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NATO 회원국들이 국내 방위산업에 다시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성공시키려면 무엇보다 서로 협력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캐나다와 유럽방위기금(European Defence Fund)
NATO가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려워진 상황은 오히려 비미국 회원국들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방위기금(European Defence Fund) 은 비록 제도적으로는 NATO와 별개의 조직이지만, 동맹 회원국들이 국방 분야에서 공동 협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기금은 방위 장비 조달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조달 과정이 각국의 국내 정치적 압력과 산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방위기금은 더욱 통합된 유럽·NATO 방위산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첫 단계이다. 비유럽 국가인 캐나다가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NATO 회원국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협력 정신을 보여준다.
캐나다가 한국산 잠수함이 아니라 독일·노르웨이 공동 개발 잠수함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이러한 새로운 협력 시대를 보여주는 사례다.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앙카라에서 NATO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분명히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NATO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가는 단순히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기보다, 동맹 전체의 전략적 필요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유럽과 다른 NATO 회원국들은 미국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 안보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방위 역량을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