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r between Morocco and Ceuta as seen from the Ceutan side. Source: Shutterstock

세우타: 국경의 광경

지난주 수천 명의 젊은 모로코인들이 세우타로 몰려들었을 때, 그것은 침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5세기에 걸친 식민지 역사를 품은 국경에서 지난 5년간 반복되어 온 강압적 이주 외교(coercive migration diplomacy)의 최신 사례였다.

지난 목요일 세우타에서 벌어진 일은 규모와 범위 면에서 놀라운 ‘국경의 스펙터클(border spectacle)’이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 대부분 젊은 모로코인들이 국경 관문으로 몰려들었고, 일부는 바다를 헤엄쳐 이 지역으로 진입하려 했다. 활기찬 젊은이들이 서로 앞다투어 국경을 넘으려는 장면부터 외교적 설전, 그리고 이주민들을 다시 모로코 쪽으로 돌려보내려 분주히 움직이는 국경경비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스펙터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등장했다.

이는 마치 지정학적 데자뷔처럼 보인다. 2021년 5월에 연출됐던 것과 거의 동일한 국경의 장면, 배우, 주역, 피해자들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세우타 사태는 ‘국경의 스펙터클’의 세 번째 에피소드다. 첫 번째는 2021년 5월, 두 번째는 2024년 9월에 벌어졌으며, 이제 우리는 세 번째 —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는 — 에피소드를 목격하고 있다. 이는 모로코의 이주 외교가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우타의 국경 스펙터클 뒤에 어떤 음모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의 강압적 이주 외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축적되어 온 지정학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로코의 이주 거버넌스는 이제 정책, 관행, 담론의 차원을 넘어 자국의 청년들과 인종화된 다른 아프리카 이주민들을 외교적 힘겨루기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20년 12월 10일, 트럼프 행정부는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했다. 이 역사적인 계기를 통해 모로코는 특히 전통적인 우방국들 — 그중에서도 과거 식민 지배국이었던 스페인 — 로부터 추가적인 외교적 인정을 얻으려 했다. 2021년 1월에는 독일이 도널드 트럼프의 서사하라 모로코 주권 인정 선언을 비판하면서 모로코와 독일 사이의 외교적 교착상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독일과의 이러한 외교적 마찰은 모로코가 유럽연합(EU)에 더욱 강한 압력을 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EU나 개별 회원국이 모로코의 기대를 충족시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았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외교 갈등은 2021년 4월 스페인이 폴리사리오 전선의 지도자 브라힘 갈리를 치료 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모로코는 약 3,000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8,000명 이상의 이주민이 국경을 넘어 세우타로 이동하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스페인의 반이민 극우정당 복스(Vox)의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이들의 유입을 비난하며 모로코가 스페인 국경을 향해 “미성년자들을 공성추처럼 내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페드로 산체스가 알제리를 방문해 압델마지드 테분 대통령과 천연가스 및 서사하라 문제를 논의한 이후, 유사한 시나리오가 다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국경의 스펙터클이 유럽 남부가 ‘침공당할 수 있다’는 일종의 도덕적 공황을 촉발했고, 산체스의 진보적이지만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비판받는 이민정책에 대한 우파의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침공이라기보다 극우 정치인들에게 반이민 담론을 강화할 새로운 소재를 제공한 사건에 가까웠다.

이 국경의 스펙터클은 세우타와 멜리야를 둘러싼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 역사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산체스를 팔레스타인 문제의 지지자이자 진보적 이민개혁의 주창자로 평가해 온 국제사회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세우타의 지리적 특성을 보며 혼란스러워한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영토를 통해 어떻게 스페인, 더 나아가 유럽이 ‘침공당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아프리카와 ‘EU럽(EUrope)’ 사이의 유일한 육상 국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지정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우타와 멜리야는 동시에 엔클레이브(enclave)이자 엑스클레이브(exclave)로 규정될 수 있다. 스페인과 유럽연합의 식민주의적 관점에서는 이 두 지역을 스페인, 그리고 최근에는 유럽의 외부 영토적 주권이 확장된 엑스클레이브로 본다. 그러나 학계의 많은 문헌에서는 이 두 도시를 아프리카 대륙에 남아 있는 유럽 식민지배의 마지막 잔재인 엔클레이브로 설명한다. 모로코인들에게 이 두 도시는 점령된 영토이며, 이를 되찾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국가적 탈식민화 프로젝트로 인식된다.

세우타와 멜리야를 둘러싼 분쟁은 오랫동안 모로코와 스페인 관계에서 간헐적으로 긴장을 유발해 왔다. 그 역사적 뿌리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 약 718~14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과정은 알안달루스의 몰락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결국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어인들이 북아프리카로 추방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페인은 이후 이베리아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에서도 영토적 주권을 확보하려 했다. 1497년 멜리야를 점령했고,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이 처음 정복한 뒤 1668년 스페인에 넘겨졌다. 두 도시는 당시 이슬람 움마(Ummah)와 기독교 세계가 충돌하는 외곽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탈식민화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도 모로코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영토보전 원칙을 근거로 두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1991년 모로코와 스페인은 우호·선린·협력 조약(Treaty of Friendship, Good Neighborliness and Cooperation)을 체결했다. 그러나 1995년 스페인은 자국의 국가주권을 정치적으로 완성한다는 명분 아래 세우타와 멜리야에 Ciudades Autónomas(자치도시) 지위를 부여했다. 모로코는 이를 조약 위반이자 두 영토를 스페인 영토로 사실상 편입하려는 은밀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듯 스페인은 1996년 말 세우타와 멜리야를 둘러싸는 장벽을 공식적으로 설치했다. 스페인은 서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의 등장으로 유럽 외부 국경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1997년 9월 당시 모로코 총리 압델라티프 필랄리는 유엔총회에서 이러한 주장을 다시 제기하며, “스페인의 점령 아래 있는 모로코 도시들” 역시 홍콩과 마카오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5년 스페인의 솅겐조약 가입은 세우타와 멜리야의 유럽화를 빠르게 촉진했다. 이에 따라 두 도시의 국경 관리는 더 이상 스페인만의 국내 문제가 아니라 유럽 차원의 문제가 되었으며, 비정규 이주를 통제하기 위해 EU와 스페인, 모로코의 공동 대응이 요구되었다. 이후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계에 위치한 두 도시의 요새화는 이른바 ‘요새 유럽(Fortress Europe)’과 국경 외부화(border externalization)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세우타와 멜리야의 이러한 국경 요새화 이후에는 인종화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식민지적 폭력이 다시 반복되었다.

세우타의 ‘국경 스펙터클’, 즉 국경에서 연출되는 극적인 광경은 식민지 폭력이 장기지속(longue durée)되어 왔으며, 국경이 그 끈질긴 역사적 잔재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탈식민화의 그늘 아래 남아 있는 이러한 영토 조각들에서 식민주의의 지속성이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식민지 역사는 유럽이 아프리카인의 이동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들의 이동을 ‘위기’, ‘문제’, ‘위협’이라는 결핍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틀로 규정하도록 만들었다.

1995년 10월 11일, 스페인 Policía Nacional(국가경찰)은 세우타에 머물고 있던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민 집단을 진압했다. 이들은 세우타에 발이 묶인 채 스페인 본토로의 이동을 허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유럽-아프리카 국경에서 최초의 ‘국경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이후 모로코-스페인 국경에서는 끝없는 ‘국경화와 재국경화(bordering and re-bordering)’ 과정이 이어졌다. 정확히 10년 뒤인 2005년 10월에는 세우타와 멜리야의 국경장벽에서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민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로코 당국은 두 도시 주변 산림지역의 이주민 캠프를 대상으로 전국적인 단속과 체포작전을 벌였고, 2,000명이 넘는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민을 알제리와 접한 외딴 사막 국경지대에 내버렸다. 다시 약 10년 뒤인 2014년 2월 6일에는 타라할 학살(Tarajal Massacre)로 또다시 15명의 이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타라할 해변을 따라 물속을 걸어 세우타로 진입하려 하자 스페인 Guardia Civil(시민경비대)이 아프리카계 흑인 이주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이후 카메룬 출신 생존자가 스페인을 상대로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매년 2월 6일이면 세계 곳곳에서 이주민의 죽음과 실종을 규탄하는 ‘CommemorAction’과 연좌시위가 열린다.

가장 최근의 비극적 분기점은 멜리야 학살(Melilla Massacre)이다. 이 사건은 내 논문의 핵심 연구주제이자 민족지학적 현장조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멜리야 학살은 이주민들의 죽음이 대규모로 드러난 역사적인 국경의 광경으로, 최소 27명의 동아프리카 출신 흑인 이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수십 명이 실종되었고, 일부는 수감됐으며, 생존자들은 알제리 국경에 버려지거나 모로코 여러 도시의 변두리 지역으로 흩어졌다.

EU의 국경 외부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식민주의 구조의 장기지속이라는 관점에서 추적하면, 세우타에서 벌어진 일을 오늘날의 이주 외교라는 단기적 관점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모로코 청년과 더 넓게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잠재력과 주체성을 소진시키는 사회적 죽음과 억압적 통제의 지속적인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모로코의 언론인, 예술가, 활동가, 지식인들은 세우타 국경 횡단을 둘러싼 지정학적 설전을 해석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국가와 시민 사이에 무너진 사회계약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모로코 청년들을 짓누르는 사회경제적 불안은 모로코인들이 처한 현실을 오랫동안 외면해온 구조적 무관심의 결과다. 국가는 2030년 월드컵을 위한 경기장과 같은 화려한 투자에는 우선순위를 두면서도 보건과 교육 같은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당한 요구는 GenZ 212 시위의 핵심 구호이기도 했다. 이 운동은 온라인에서 시작되어 젊은 모로코인들이 주도한 풀뿌리 운동으로, 세우타 국경으로 몰려갔던 일부 청년들도 여기에 참여했다. 많은 시위 참가자들이 구금됐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항해에 적합하지 않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이른바 ‘뒷길(backway)’을 선택했다.

모로코 국경의 관점에서 보면 세우타의 국경 스펙터클은 감옥과도 같은 탈식민적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탈출의 상징이다. 이는 침공도 아니며, 모로코의 국경 통제체제가 스페인 측보다 한 수 위의 전략을 구사한 것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모로코 청년들은 단순한 비행이나 일탈의 이미지와 달리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변화의 주체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청춘과 가능성, 주체성을 끊임없이 짓누르는 거대한 정치적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2015년부터 대서양 항로에서 발생하는 국경 사망자를 집계해온 스페인 NGO Caminando Fronteras는 8월 4일 기준 141명의 이주민 사망자를 기록했다. 여전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실종 상태다. mafqudin(실종된 이주민)의 가족들은 극심한 불안과 혼란 속에서 실종된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국경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주 문제 활동가들의 연대체인 Border Resistance는 세우타 국경에서 벌어지는 불법 강제송환, 구타, 굶주림 등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있으며, 모로코 청년들과 수단 및 예멘 출신 망명신청자 가운데 실종된 mafqudin을 수색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국경을 넘는 행위에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라는 문화적 통과의례가 수반되며, 무사히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다시 태어남, 즉 재생을 의미한다. 고향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죽음에서 벗어나 국경 너머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주민들은 모로코 국경 밖의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 육체적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다.

모로코 이주민들에게 위험한 경로에서 목숨을 거는 것은 사회적 죽음의 아가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이었다. 그 위험 속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다시 태어나고 재생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모로코인들이 세우타와 유럽을 향할 것이다. 끝없이 강화되는 국경의 안보화도, 그 과정에서 이어지는 폭력적인 죽음과 실종도 이들의 이동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다.

First published in: Africa Is a Country Original Source
Nabil Ferdaoussi

Nabil Ferdaoussi

나빌 페르다우시는 케이프타운 대학교 아프리카 인문학 연구소(HUMA)의 박사 연구원이며, 라바트 국제대학교 국제연구센터의 연구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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