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플랜은 반도체 투자를 유치하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미국 의존과 조립기지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2026년 7월 1일, 미국 정부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자동 갱신하지 않고, 대신 2036년까지 매년 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협정이 종료될 가능성과 전 세계적인 산업정책의 부활에 직면하면서 멕시코는 국가의 제도적 구조를 재정립하고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멕시코는 세계 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자 하는가? 어떤 산업에서 경쟁할 것인가? 동맹국은 누가 될 것이며, 국가와 민간기업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멕시코 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은 반도체, 제약, 자동차, 항공우주 등 전략 산업에서 수입대체를 추진하고, 수출품의 현지 부가가치와 국내 조달 비중을 높이는 산업화 요소를 포함한 개발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도체 분야의 목표가 멕시코의 현재와 같은 미국 경제에 대한 종속적 통합을 오히려 강화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제조·조립 활동에 집중하는 국가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반도체 공급망을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시키고 라틴아메리카를 핵심 거점으로 만들려는 새로운 전략의 윤곽도 보여준다.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은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기술적 부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추진한 데 이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2년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는 동시에 중국으로의 기술 및 노하우 이전을 제한하기 위한 CHIPS and Science Act에 서명했다.
CHIPS Act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미국 국무부가 미주개발은행(IDB)과 함께 개발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국제기술안보혁신기금(International Technology Security and Innovation Fund)을 통해 멕시코, 파나마, 코스타리카에서 반도체 조립·테스트·패키징(Assembly, Testing and Packaging, ATP)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플랜을 통해 100억 달러 규모의 ATP 사업을 자국으로 이전하고 ATP 생산업체 투자의 30% 이상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수출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ATP 활동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부문에 해당한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에 따르면 ATP는 전체 공급망 부가가치의 6%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여러 자료는 연구개발(R&D)과 웨이퍼 제조가 각각 전체 부가가치의 약 50~58%, 24~3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OECD에 따르면 ATP 활동은 일반적으로 반도체 생산 및 설계보다 이윤율이 낮고 노동집약적이다. 설계 부문은 연구개발(R&D)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반도체 제조에는 막대한 자본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망은 국가 차원과 기업 차원에서 모두 이중적인 집중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본질적으로 지정학적 긴장에 민감하다. 대부분의 연구개발 활동은 애플, 인텔,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이 위치한 미국에 집중돼 있는 반면, 조립·테스트·패키징(ATP) 활동은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에 분산돼 있다. 한편 최첨단 반도체 생산은 대만의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TSMC)를 중심으로 대만에 집중되어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갖는 전략적 중요성 덕분에 대만은 중국의 영토적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지원을 확보해 왔다.
공급망 이전은 2025년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미국이 TSMC와 1,650억 달러가 넘는 투자에 합의해 미국 영토에 최첨단 반도체 생산공장과 ATP 시설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은 설계와 생산을 미국에 배치하는 한편, ATP 활동 일부를 멕시코, 파나마, 코스타리카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콜롬비아와 같은 국가에서 희토류 등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적 구도는 라틴아메리카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향후 반도체 공급망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 입장에서 라틴아메리카 정부들과의 관계 및 이 지역 자원에 대한 통제는 국가안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역내 국가들 입장에서는 단순한 조립기지의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재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포장된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피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다. 이는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가 ‘발전의 함정’으로 지적하는 생산 정체, 사회적 배제, 제도적 취약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