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 모두에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비전이 나타나야만 도움이 될 것이다.
호주가 직접적으로 군사적 관여를 하지 않은 외교 정책 중 현재의 가자 지구 전쟁만큼 분열을 야기한 이슈는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호주는 이스라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였다. 원래 이것은 호주 노동당과 연관되어 있었던 이슈로서 유엔에서 Herbert Evatt 박사의 역할과 이스라엘에 대한 밥 호크(Bob Hawke) 총리의 열광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심이 바뀌었다. 퇴임 후 호크 총리 자신은 더욱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 되었고, Gareth Evans 과 Bob Carr 전(前) 외교 장관은 현재 이스라엘의 가장 신랄한 비판자 중 하나이다. 호주 자유당은 가자 지구 대학살에 대한 비판에 둔감한 것처럼 보이는 네타냐후 정부의 입장을 수용했다.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호주의 입장은 매우 효과적인 친이스라엘 로비 그룹과 세계에서 가장 열렬한 시오니스트 중 하나인 유대인 공동체 때문이다. 또 다른 부분은 미국의 반사적 반영에 따른 것이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주이스라엘 호주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르고 있었고 Wentworth 보궐선거에서 유대인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 이외에도 혼란과 독재 체제로 얼룩진 중동 지역 내에서 민주주의라는 서구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스라엘과의 암묵적인 정체성이 호주내에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선전전(戰)은 자국 군대가 자행한 잔혹 행위는 간과하면서 하마스와 헤즈볼라 테러를 강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의 감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정치적 계층보다 더 명확하게 보는 젊은 호주인들에 의해 점점 더 의문시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정의하지만, 실제 이스라엘인이라는 정의를 공유하지 않는 인구의 절반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렇다, 이스라엘의 아랍 시민은 거주 인정은 되지만 그들의 지위는 법적으로 유대 이스라엘인의 지위와는 다르다. 점령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의 엄청난 성장(현재 700,000명 이상의 주민이 있는 것으로 추정)으로 많은 관찰자들에게 이곳에 아파르트헤이트에 비유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믿게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정치인의 수사(修辭)학적 대안인 두 국가 해결방안의 아이디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 일시적으로 가능해 보였던 두 국가 해결 방안을 향한 진전이 왜 멈추어지고 양측이 책임을 공유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지배 세력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의미 있는 주권을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타냐후 정부는 이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 같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일부로 지정된 지역에 지속적인 유대인 정착을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당국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추구하는 그것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가자 지구에 하마스가 존재하는 것을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분쟁이 끝나더라도 양측에서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비전의 결합만이 평화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이 분쟁은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현재 옹호되고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그 중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강력한 공동 보호 장치를 갖춘 단일 국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은 Antony Lowenstein과 Ahmed Moor가 편집한 책 “After Zionism”의 새 판에서 논의된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땅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면(“강에서 바다까지”라는 슬로건은 양측 지지자들 모두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불균형이 있다. 이스라엘은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란의 지지를 지켜냈지만 아랍 세계의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았다. 가자 지구가 무자비하게 폭격을 받자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사업가와 관광객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데려왔다.
어떤 합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구 국가들이 현 분쟁 이후 이스라엘 정부에 있는 누구에게든 큰 양보를 하도록 충분한 압력을 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 네타냐후 정부는 안보 실패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주권에 대한 열망을 부정하고 인종 청소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는 장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부 또한 노령화되고 부패하며 무능하지만, 어떤 팔레스타인 운동도 네타냐후 총리가 종종 언급하는 영구적인 팔레스타인인의 ‘주권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
호주 Albanese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을 반(反)유대주의로 지속적으로 혼동하는 머독 소유 언론에 의해 촉발된 민감한 국내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지 입장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Penny Wong 호주 외교 장관이 자유당과 녹색당 모두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Albanese 정부는 호주의 대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며 Wong의 중동 방문은 교묘하게 계산된 외교 쿠데타였다.
그러나 현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호주가 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올해 대선이 치러지는 미국의 정치 상황과 이스라엘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오랜 감정적 유대 관계로 인해 네타냐후 정부에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하기를 꺼리는 바이든 행정부로 부터 호주의 보다 강력한 입장이 환영을 받을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호주가 미얀마나 중국 같은 나라의 인권 침해에 대해 말할 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호주 정부가 이스라엘과 같은 불편한 상대에게도 기꺼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대량 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그럴듯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 가자 지구에서 겪고 있는 대학살의 규모를 보여준다. 10월 7일 하마스의 잔혹행위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과 “연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네타냐후 정부와 “연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