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 소련 연방 국가들이 소련의 폐허에서 등장하면서 중앙아시아는 종종 국가 간 적대감과 이 지역의 국제 지정학적 경쟁의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중앙아시아는 5개 국가 모두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매우 다른 수단을 채택했지만, 대부분의 이 지역 국가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의 희생양이 되었다. 왜곡된 소비에트 시대의 중앙집권화와 수익성이 좋은 풍부한 천연자원 매장지의 존재는 이 지역 전체에 이러한 불행한 상황을 촉진했다.
이와 관련해 우즈베키스탄도 예외는 아니며, 우즈베키스탄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슈퍼 대통령제를 갖추고 있다. 카스피해와 파미르 산맥 사이의 대부분의 땅을 덮고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이 지역의 중요한 행동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 이후 두 지도자 하에서 우즈베키스탄은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를 위해 자신의 지정학적 상황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우즈베키스탄은 자국 인구의 영구 빈곤을 보장하는 경제 시스템과 국내 정치 체제를 영속화하는 동시에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를 보장하려고 시도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 지역 환경과 외부 이해 당사자의 보다 큰 관심에 직면한 우즈베키스탄이 스스로 개척하는 우즈베키스탄의 미래는 이 지역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즈베키스탄의 국내 정치는 근본적으로 초(超)중앙집권화로 정의된다. 지방 정부에 최소한의 권한을 이양하는 비율을 갖고 있는 지리적 단일 권력 구조가 우즈베키스탄의 이러한 국내 통치 방식을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의 초중앙집권화 경향은 분명히 소련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국가 권력은 행정부에 매우 집중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은 헌법상 서로 다른 정당을 허용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정당의 국가 등록 요건은 지역 정당의 발전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며, 모든 새로운 정당은 전국적으로 최소한 일정 비율 인구의 서명이 요구된다. 정당 등록을 위한 이러한 고도로 관료적인 시스템은 Olij Majlis(우즈베키스탄 의회) 내에서 효과적인 반대세력이 없도록 보장한다.
소련에 의한 지배 역사의 그림자는 국가 경제 건설에도 나타난다. 거의 모든 주요 전략 산업은 여전히 국영 기업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편향된 경제 발전이 추진되어 동부 지역은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반면 그 주변 지역은 항구적인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도시 간 도로를 따라 있는 경찰 장벽과 인구 등록 의무화로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주가 제한된다. 아랄 해의 환경 파괴로 Karakalpakstan 자치 공화국은 주변 지역 중 가장 궁핍하고 빈곤한 지역이 되었다. 중앙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지역인 Karakalpakstan 지역은 국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앙집권화를 완성하려는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자치 공화국이라는 지위가 보장되었다. 2022년 Karakalpakstan 지역의 자치 공화국 지위를 철회하려는 시도로 인해 시위가 벌어져 1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거나 구금되었다.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Shavkat Mirziyoyev)대통령이 자치 공화국 지위를 철폐하려는 시도를 철회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시위 발생은 이 지역이 여전히 극심한 예속과 절망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평화와 안보의 유일한 보증인이라는 이미지를 자랑하려는 정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기회의 부족과 지속적인 보안 조치로 국민들은 매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는 소련 연방의 붕괴로 빠르게 우즈베키스탄에서 권력을 잡았다. 독립 이전 우즈베키스탄은 민족주의 대중 운동이 거의 없었으며, 독립은 소련 연방의 붕괴로 갑작스러운 순간에 일어났다. 독립 초기 우즈베키스탄은 실제 소련 연방으로부터 탈퇴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련 연방으로부터 카리모프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치 체제를 물려받았다. 이러한 유산은 그가 대통령직 내내 끈질기게 유지해 온 슈퍼 대통령제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 지침은 강대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카리모프 대통령에게는 표면적으로는 국가의 주권 유지가 중요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개인 지배 체제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전략적 균형에 대한 이러한 그의 초점은 주로 구조적 편집증에서 야기되었다. 정권 위협에 대한 인식은 특히 ‘색깔 혁명’의 등장으로 가시화 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는 인접 국가(조지아,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인해 급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우즈베키스탄 국가의 Andiian 학살에서의 역할에 대해 미국이 직접적으로 비판하자 카리모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 심화를 정권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Andiian 학살에서 민간인 700명이 보안군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이것은 이슬람 운동의 증가에 대한 카리모프 정권의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 러시아가 이 학살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요청을 모두 거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즈베키스탄-러시아 간 관계가 재개되고 확대되었다.
2016년 카리모프 대통령이 사망한 후 미르지요예프는 재빠르게 카리모프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집권한 첫 몇 달 동안은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법치주의와 법원의 투명성을 위한 개혁을 시작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암울한 인권 상황을 해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가장 중요한 개혁은 그가 이 나라의 광대한 목화밭에서 대규모 인구를 대상으로 한 강제 노동 관행을 폐지한 것인데, 이 관행은 현대 세계에서 가장 큰 노예 노동 사례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 시대는 불행하게도 빨리 끝났다. 지난해 즉석 선거에서 87.1%의 표를 얻은 미르지요예프는 대통령 임기 제한을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임기 제한을 없애는 일련의 개혁을 시작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특히 전임자인 카리모프 대통령에 비해 대외 관계에 있어 뚜렷하게 광범위하고 개방적인 접근 방식을 추구해 왔다. 두 지도자 모두 전략적 균형을 실용적으로 사용했지만, 이를 달성하는데 있어 두 대통령이 사용한 방법은 현저히 달랐다. 실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전임자의 외교 정책을 국가에 대한 주요 경제 및 안보 제약으로 간주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 번에 상당히 큰 힘을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다자적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전에 국가의 외교 정책에서 무시되었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이러한 다자적 접근 방식은 주목할만한 지역적 효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Fergana 계곡의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을 위한 단기 체류 비자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우즈베키스탄 민족 공동체는 소련 붕괴 후 국경 경계를 획정하는 문제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분리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해 심각한 지역간 적대감이 발생했으며 특히 다공성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어 지속적인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 우즈베키스탄은 이러한 우즈베키스탄 민족 공동체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권리 주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또한 물 안보 문제로 인해 20년 동안 관계가 동결된 타지키스탄과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난해 수도 타슈켄트에서 터키-이란-파키스탄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긴밀한 동맹 관계를 더욱 확대해 왔다. 이런 점에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집권 하에 시작된 새로운 외교정책은 한 국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단일 관계 추구가 아닌 다자 관계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
우즈베키스탄 외교정책의 미래는 앞으로 전략적 파트너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지역의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관계는 여전히 강대국과의 관계이다. 분석가들은 오랫동안 우즈베키스탄을 놓고 중국과 러시아가 경쟁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당장의 상황에서 중국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에게 더 이익이 나는 선택으로 보인다. 처음 우즈베키스탄과 미국 간 관계를 약화시켰던 정권 생존에 대한 그런 위협 없이 중국은 재정적 지원과 인프라 투자를 제공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 제약을 계속 겪고 있다. 이전에 상당한 상호 이익을 제공했던 러시아 이주 노동자로 부터의 송금액이 급격히 감소했다. 실제 우즈베키스탄-러시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요소는 이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를 떠나는 러시아인의 대량 이주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앤서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중앙아시아 지도자들을 미국과 더 가깝게 만들고 러시아가 서방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대규모 외교적 노력을 완료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낮지만, 전략적 파트너로서 러시아의 효용성이 감소하는 것은 관계 변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보다 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를 확대하고 다변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추진한 외교 정책에 따라 지역의 이웃 국가와의 우호적인 관계는 여전히 중요한 발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이 보다 큰 파트너십을 관리하는 방식은 우즈베키스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할 것이다.
First published in :
World & New World Journal Publication, Written by Joel Moff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