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s Turn To The East And Sino Russian Relations: Start Putin-Xi meeting (2)

러시아의 동방화와 중-러 관계

러시아에게 ”동방“이란 어디일까? 이것이 러시아의 “동방 회귀” 정책의 핵심 질문이다. 러시아 역사를 통틀어 동·서양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특히 슬라브주의자들과 서구주의자들 간의 대립에서 논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들의 논쟁은 주로 “동서(東西)”라는 문제의 틀 내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동·서양에 대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그들의 논쟁을 바라보는 것은 올바른 입장이 아니다. 슬라브주의자들이 이해하는 “동방”은 통상적인 의미의 아시아, 즉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현재의 아시아가 아니었다. 슬라브주의자들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주장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아시아”는 유럽과 대조되는 슬라브 문명, 즉 러시아 자체를 의미했을 뿐,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유교 문명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들은 러시아의 전통과 역사가 유럽의 전통과 역사와 구별되고 자급자족적이라고 주장하며, 러시아는 아시아가 아닌 슬라브적, 즉 독자적인 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슬라브주의자들은 러시아를 아시아 문명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

슬라브주의자들과 서구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유럽에 속하는지에 대해 견해가 정반대이지만, 러시아가 아시아에 속하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일치한다. 슬라브주의자들과 서구주의자 모두 러시아를 아시아 문명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논쟁의 주제는 유럽과 아시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의 논쟁에서 “동방”은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과 러시아 자체를 지칭한다.

러시아 유라시아주의는 1920년대에 등장했는데, 그 사상에 따르면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나 아시아에는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는 “폐쇄적이고 지리적, 경제적, 민족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라시아주의 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는 하나의 독특한 문명으로 친슬라브주의적 사고를 반영하는 개념이다.

소련 연방 붕괴 후 러시아에는 다양한 흐름을 아우르는 신(新)유라시아주의가 등장했다.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와는 달리 신유라시아주의는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천적 지향을 추구한다. 구소련 공화국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시작하면서 신유라시아주의는 특정한 정치적, 지정학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유라시아의 자급자족이라는 관념은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에서 계승되었다.

친슬라브주의도, 서구주의도, 유라시아주의도 실제로는 아시아로 향하지 않는다. 서구주의는 본질적으로 외향적이며 유럽과의 통합을 주장한다. 친슬라브주의와 유라시아주의는 내향적이며 이전의 뿌리로의 회귀를 요구한다.

이러한 주요 사상의 흐름 중 어느 것도 아시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는데 어떻게 동방으로의 회귀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는 모순이 아닐까?

사실, 모순은 없다. 러시아의 지적 전통들 사이의 논쟁의 핵심은 러시아 문명의 특징과 그 발전 경로에 관한 것이며, 동방으로의 선회는 주로 외교 관계 및 대외 정책과 관련이 있다. 전자의 경우, 이는 정신적 동서, 즉 문명적·문화적 동서에 관한 것인 반면 후자의 경우, 이는 국제 관계 측면에서 동서에 관한 것이며, 특정 국가와 지역이 속한 문명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다.

이 두 측면 사이에는 갈등이 없다. 전자는 국가의 문명적 위치를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외교 정책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문명적 위치와 외교적 위치는 동일하지 않다. 한 국가의 문명적 위치는 그 국가의 가치 체계와 정신적 지향을 반영한다. 한 국가의 외교적 위치는 특정 시점의 외교 정책의 핵심 측면을 반영한다. 문명적 측면은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만, 외교 정책 우선순위의 영구적인 변화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한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 정책은 문명적 정체성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 경제, 안보 이익에 의해서 형성된다. 복잡한 국제 환경에서 정치, 경제, 안보 이익이 대개 한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 정책을 결정한다.

문명적 지위는 국가 간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유럽 문명에 속한다고 해서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가 비서구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반드시 더 좋거나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러시아는 대부분 비(非)서구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 서구 국가들과는 우호 관계가 거의 없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의 역사적 맥락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는 러시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러시아 외교 정책의 역사를 통틀어 “동방”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시대마다 변화해 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방”은 유럽과 지리적으로 분리되고 문화적으로도 유럽과 다른 아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 맥락에 따라 “동방”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동방”은 러시아를 둘러싼 아시아 지역을 지칭하는데, 단순히 지리적으로 러시아의 동쪽(예: 중국이나 동아시아)에 위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보다 광의의 의미로 사용된다. 문화적으로 동방은 기독교가 아닌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오스만 제국, 코카서스, 청나라, 중앙아시아 칸국 등은 모두 기독교 문화권 밖에 있었다.

러시아에는 “동방은 미묘한 문제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소련 영화 “사막의 하얀 태양”의 주인공인 붉은 군대 병사 표도르 수호프의 말에서 유래했는데, 동방을 묘사하는 유명한 격언이 되었다. 이 영화의 맥락에서 동방은 중앙아시아를 지칭했는데, 이는 1920년대(즉,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 러시아의 사고방식에서 중앙아시아가 “동방”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는 현재 “동방으로의 중심 이동”이라는 개념 속에 속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여러 차례 동방으로 향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언제부터 동방으로 향했는지에 대한 의견 일치는 없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도 동방은 러시아 외교 정책의 중요한 지역이었다. 오스만 제국과 코카서스는 이러한 동방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그 일부였다. 16세기 이후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 중국 청나라, 중앙아시아 칸국 등과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계속해서 동방 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표트르 1세 러시아 황제는 “유럽으로 향하는 창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동방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1716년, 그는 히바와 부하라로 군대 원정을 명령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17세기 후반부터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오스만 제국 간 전쟁이 열 차례나 벌어졌다. 오스만 제국은 동방의 일부로 여겨졌지만, 전쟁이 벌어졌던 지역인 코카서스, 볼가 강 하류, 크름 반도, 서부 우크라이나, 몰도바, 베사라비아, 이스탄불, 발칸 반도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서방의 일부로 여겨진다. 유럽에 인접한 이 따뜻하고 비옥한 지역은 진정한 의미의 동방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이는 지역은 러시아 신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이 지역으로의 무게 중심 이동이 동방으로의 회귀는 아니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회귀였다.

중세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은 북쪽 발트해를 통해 모피와 목재를 수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러시아는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선 남쪽을 바라보고 흑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남쪽 지역으로의 외교 정책의 중심 이동은 예카테리나 2세(1762~1796) 통치 기간 동안 정점에 도달했고 크름 전쟁(1853~1856)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러시아의 첫 번째 동방으로의 회귀가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으며 세르게이 비테 백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드르 3세(1881~1894)와 니콜라이 2세(1894~1917)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비테는 교통부 장관, 재무부 장관, 각료회의 의장 등 여러 고위직을 역임했다. 비테의 노력 덕분에 동방으로의 회귀는 경제, 무역-투자, 운송-물류 전략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아이디어를 지지했다. 그의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중국 북동부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중국 동방 철도 건설이 계획되고 완료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러시아-중국 은행이 설립되었다. 비테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동방 전략을 제안한 최초의 러시아 인물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19세기 후반까지 러시아가 아시아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중앙아시아와 극동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많은 행동은 상부의 지시가 아닌 현장에서 즉석으로 수행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팽창주의적 행위가 성공하자, 러시아 제국은 이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수용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 맺어진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에 따라 아무르 강 유역(중국어로 헤이룽장)은 청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크름 전쟁 이전에도 러시아 군대는 이미 그 지역에 주둔하여 정착지를 장악하고 군전초 기지를 건설했다. 러시아 제국은 이것이 양국 조약을 위반하고 중국 영토를 침범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니콜라이 1세(1825~1855)는 “한 번 게양된 러시아 국기는 절대 내려서는 안 된다”라고 선언했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첫 회귀는 소련 건국 초기에 이루어졌으며, 당시 외교인민위원 게오르기 치체린의 외교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여러 저자들은 현대적 의미에서 러시아의 첫 번째 동방으로의 회귀는 크름 전쟁 종전 후 러일 전쟁(1904~1905)때 까지 이어졌다고 확신한다. 세르게이 비테가 제시한 동방 전략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첫 번째 동방으로의 회귀는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동부 식민지화를 위한 것이 주된 목표였으며, 경제적 이익은 부차적인 역할을 했다. 중앙아시아, 극동, 그리고 코카서스가 러시아의 주요 이동 방향이었다. 그 결과 러시아는 서쪽으로는 코카서스를 장악하고,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전체를 정복했으며, 동쪽으로는 태평양 연안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러시아는 18세기 초 이미 중앙아시아에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크름 전쟁 당시에는 이 지역에 이미 깊숙이 침투했다. 예를 들어, 1854년에서 1855년 사이 러시아 군대가 베르노예 요새를 건설했는데, 이 요새는 베르니(현재의 알마티) 시의 기반이 되었다. 크름 전쟁 이후,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남진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에는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정복하며,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접근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이 전략 수행은 러시아 황제에 의해 N.P. 이그나티예프 대령에게 맡겨졌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진격하는 동안 영토 확장과 식민지화가 주요 목표가 되었고, 영국을 봉쇄하려는 목표는 뒤로 밀려났다. 1858년부터 “19세기의 예르마크”라고 불리운 체르니아예프의 투르키스탄이 합병되었고, 침켄트, 세미팔라틴스크, 타슈켄트 등의 도시들이 러시아 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1867년에는 빌니우스 총독을 지낸 K.P. 카우프만이 이끄는 투르키스탄 총독령이 수립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부하라 토후국, 히바 칸국, 코칸트 칸국이 카우프만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 시점에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과 식민지화는 사실상 완료되었다.

중국은 이러한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 물결에서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 되었다. 크름 전쟁 이후 몇 년,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베이징을 점령하고 내부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을 이용하여 러시아는 청나라 정부에 일련의 조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했다. 그 결과 중국은 북동부와 북서부에서 15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땅을 잃었다. 이 사건을 주도한 책임자는 러시아 제국의 중국 특사 N.P. 이그나티예프였다.

러시아의 동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는 아무르 강을 건너 중국 북동부로 진출하여 “황러시아”(黃Russia)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만주 전체를 합병하려 했다. 즉 이 지역을 제2의 부하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결국 실패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강대국들이 중국의 영토 분할을 놓고 분쟁과 갈등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1896년 러시아 제국과 청나라 정부는 동맹 조약(아이군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에는 일본이 중국의 어느 한 쪽이나 한국을 공격할 경우 공동 군사 행동을 취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조약은 또한 러시아에게 전시 병력 수송을 위해 중국 북동부 지역을 통과하는 철도를 건설할 권리를 부여했는데, 실제 이 철도 건설은 황러시아 개념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1897년, 독일이 중국 청도항을 점령하자 청나라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 제국은 일본의 공격이 있을 경우에만 청나라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를 들어 지원을 거부하고, 대신 청나라에 여순항(뤼순)을 할양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1900년, 러시아는 8국 동맹에 가입하여 중국에 군대를 배치했는데, 이는 사실상 전쟁 행위였다. 러시아는 중국 북동부 전역을 점령했고, 장둥성의 64개 마을에서 중국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1904년에서 1905년 사이 만주와 한국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결국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러일 전쟁의 주요 군사 작전 지역은 중국 북동부였다. 이 전쟁 후 러시아는 외몽골의 독립을 지원했고, 그 결과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양국 관계의 역사와 주요 인물들을 매우 다르게, 심지어 정반대로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국 국민의 역사 의식 속 당시 러-중 관계는 중국에 고통을 안겨주고 중국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굴욕의 세기”의 일부로 여겨진다. 러-중 관계의 복잡한 역사는 어두운 시기와 우정과 상호 지원의 시대를 모두 아우른다. 특히 중국-일본 전쟁(1938-1945) 당시 소련은 중국에 군사 지원과 중국 국가 건국(1949) 이후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 이러한 협력의 시기 또한 중국의 역사적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가 처음으로 동방으로 방향을 전환한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러시아의 동방 확장은 정점에 도달하여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고, 극동과 중앙아시아에서 확장은 자연스럽게 한계에 도달했다. 이 과정은 러시아 제국의 동부 국경 완성으로 정점을 이루었고, 이 국경은 1991년 소련 연방 붕괴 때까지 유지되었다.

현대 시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

현대 시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과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2014년 발발한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과 서방과의 갈등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동방 정책 변화는 여러 요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첫째,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둘째,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 필요성, 셋째, 국제 정세의 영향이다.

21세기 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며 여러 경제 강국들의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러시아의 관심을 끌었고, 러시아는 이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여 이 지역에서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이유를 거듭 언급했다.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 정책의 핵심이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러시아의 모든 조치는 이 목표를 지향한다. 2012년 푸틴 대통령은 ‘동방 전략’을 발표하며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 목표를 제시했다. 이 지역은 차르 러시아 시대부터 풍부한 천연자원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이 지역 자체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가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데 이 지역이, 21세기 부의 원천이자 러시아의 번영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1세기 전체의 최우선 과제로 극동 개발을 제시했다. 2024년 9월 제9차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은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러시아의 미래가 이 지역에 크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서부와 동부 지역 사이에는 큰 개발 격차가 존재한다. 동서 간 사회경제적 격차는 경제와 국가 안보 모두에 문제를 야기한다.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은 광활하고 자원이 풍부하지만, 인구 밀도가 낮고 경제적으로 저개발 상태이며, 기반 시설이 노후하고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국, 일본, 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경제 강국으로 인구 밀도가 높으며 자원 수요가 높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개발하지 않으면 서부와 동부 지역 간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커지고 동부 지역의 인구는 더욱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나중에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 지역이 매력적이지 않게 만들어, 러시아 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심지어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토적 방향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의 러시아의 동방 정책은 유럽으로의 방향 전환이 좌절된 후에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는 러시아의 크름 전쟁 패배 이후에 이루어졌으며, 소련의 초기 동방 개발 또한 서방과의 어려운 관계 때문에 시작되었다. 유럽 열강이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러시아는 서방에서 기회를 잃으면서 보다 쉽게 장악할 수 있는 약체 지역인 동방으로 눈을 돌렸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의 압력에서 벗어나 동방에서 이득을 얻어 서방에서의 손실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서방 간 가장 심각한 갈등 사태로 발전했고, 양자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서방은 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엄격하고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가하여 러시아와 거의 모든 정치, 경제, 금융, 기술, 교통, 문화, 스포츠, 교육, 인도주의적 관계를 단절했다. 이는 러시아-유럽 관계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과거 크름 분쟁 기간에도 유럽은 러시아와의 경제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고 중립국을 통한 무역은 지속되었다. 이제 러시아와 서방은 큰 장벽으로 분리되어 유럽은 둘로 갈라졌고, 이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는 전쟁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봉쇄를 뚫고 유럽에서 입은 손실된 시장과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동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동방으로의 선회를 가속화했을 뿐,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이미 시작된 정책이었기 때문에 동방으로의 선회를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는 오랫동안 학계에서 과학적 개념이자 정치적 전략으로 발전해 왔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였다. 그는 1996년 외교장관 재임 시절에 이와 유사한 개념을 제안했다. 2012년 발다이 국제 토론 클럽에서 그는 “대양을 향하여, 혹은 러시아의 새로운 세계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는 러시아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발전 구상을 제시한 것이었다.

S.A. 카라가노프 교수와 T.V. 보르다체프는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들 중 한 명이며, 이후 이 주제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와 논문을 발표하여 여론을 형성했다. 중국 전문가인 A.V. 루킨 교수 또한 2014년 러시아의 동방 선회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다른 많은 러시아 연구자들도 이 문제를 다루는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동방 선회”라는 정책은 개념 자체보다는 늦게, 그리고 우크라이나 크름 반도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제안되었다. 동방으로의 선회라는 개념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2008~2012) 재임 시절에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2010년 연방의회 연설에서 그는 러시아가 아시아 태평양 경제권으로의 지역 통합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확대가 전략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2년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하면서 “동방으로의 선회” 전략은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동방으로의 회귀는 2012년부터 발전하기 시작했고, 푸틴 대통령은 2013년 연방의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태평양으로의 선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동방으로의 선회와 같은 의미였다.

“동방으로의 선회”라는 용어는 시대에 따라 목표와 방향에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했다. 같은 시기에도 그 내용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보완되었다.

러시아 외교 정책에서 동방으로의 선회는 처음에는 유럽 중심적 외교 방향에 대한 보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동방 선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유럽 중심적 외교 정책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유럽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었고, 이는 메드베데프 대통령 집권 이전까지 동방 선회 정책의 기존 내용이었다. 이후 러시아 외교 정책에서 동방 지역은 유럽 지역만큼 중요해졌으며, 양 지역에 대한 균형적 발전 방향이 제시되었다. 2012년 이후 동방과 서방 지역 간 균형이 동방 선회 정책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동방 선회의 이념적 의미는 다시 변화되었다. 서방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동방(남반구 포함)으로의 선회가 유일한 러시아의 선택지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방 선회는 러시아 외교 정책의 중심이자 지지 기반이 되기 시작했다. 동방 선회는 더 이상 단순히 유럽과 아시아 지역 간 균형을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어도 당분간은 아시아 지역이 핵심 지역으로 유럽은 부차적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러시아의 외교 정책의 주요 방향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학계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과 함께 표트르 대제 시대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300년 유럽 여정이 끝났다고 주장한다. “유럽으로 통하는 창”은 이제 닫혔고, 러시아는 “고향”, 즉 동방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결론은 150년 전 위대한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내린 것이다. 그는 19세기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역사적 여정을 마무리했으며,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련 연방 붕괴 초기, 서구주의가 러시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러시아는 주저 없이 서구의 품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여기서 저자는 “서구주의”를 서구에 대한 존경으로 더 잘 이해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빠르게 개선되었고, 낙관적인 전망들이 많이 제기되었다. 러시아 사회는 유럽이라는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유라시아적 가치에 “마지막 대못”을 박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러한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았다. 러시아와 유럽의 완전한 분리에 대한 예측이 실현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들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697년에서 1698년 사이에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유럽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며 대사관을 설치했다. 대북방 전쟁(1700년에서 1721년)에서 승리한 후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유럽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때로는 유럽 국가들의 파트너로서, 때로는 적대국으로서, 그러나 항상 유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와 유럽 간 대립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제재 때문이며 이러한 대립은 국제 정치 및 경제 흐름과 맞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외교 정책의 근간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현재의 대립 상황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것이지, 러시아에게 있어 유럽의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의 정치, 경제,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은 지리, 문화, 종교 등 여러 측면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여전히 유럽 문명의 일부이며 유럽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으며, 유럽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안보적 관점에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유럽 관계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 또는 퇴보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유럽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을 무시하거나 유럽 중심의 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기회가 주어지면 러시아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갈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유럽과 아시아가 러시아 외교 정책의 핵심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항상 다차원적 외교 정책과 대외 파트너들과의 다각화된 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두 지역에 접근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고 서방의 제재가 해제되면 러시아-유럽 관계 정상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후 러시아와 유럽 간 경제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복은 어려울 수도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러시아는 서방이나 동방 중 어느 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면 결국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곤 했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의 성공 여부는 러시아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의해서만 판단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단순한 외교 정책이나 경제 개념이 아니라, 포괄적인 국가 발전 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그 성공 여부는 국가발전 전략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세 가지 핵심 기준이 제시될 수 있다: 극동 및 시베리아의 사회경제적 발전, 러시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경제 통합 정도,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의 담론 강화. 세 영역 모두에서의 발전은 성공을 의미하며, 후퇴는 정체 또는 퇴보를 시사한다. 이러한 지표는 장기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결과는 일시적인 추세만을 보여줄 뿐, 전반적인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동방으로의 선회는 긴 과정이며, 필연적으로 어려움과 좌절을 동반할 것이다. 러시아 역사를 살펴보면 외교 정책 방향의 대전환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수많은 부침을 겪었으며, 때로는 실패까지 겪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항상 다시 일어서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글로벌 사태 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동방으로의 선회가 완료되려면 100년을 더 기다릴 수는 없지만, 구조적 전환에는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며,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그 중 대부분은 러시아 내부에서 발생한다.

동양을 이해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인, 특히 서구주의자들에게 있어 동방과 서방은 정반대 개념이다. 서방은 문명과 진보를 상징하는 반면, 아시아는 야만적이고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러시아어에서 “아지아치나(Aziatchina)”라는 단어는 문화적 후진성, 거칠음, 그리고 예의 없음과 관련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유럽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위대하고 고귀하며 인간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이 유럽 땅에서 솟아오르고 성장하고 번영하며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상당히 남아 있으며, 특히 현대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문화적 편견을 전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장벽 때문에 러시아는 유럽 국가도 아시아 국가도 될 수 없다. 진정으로 아시아의 일부가 되려면 러시아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러시아 정부 기관의 효율성은 중요하며, 지방 정부의 효율성은 더욱 중요하다. 모든 중앙, 지방 정부 기관은 동방 전략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방 공무원들의 열정과 효율성은 이 전략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료주의와 무관심은 아무리 유망한 프로그램이라도 망칠 수 있으며, 부실한 거버넌스와 부패는 성공적인 정책조차 망칠 수 있다.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발전 모델을 찾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이 지역의 상황은 매우 독특하다. 중국, 일본, 한국의 모델은 러시아의 상황에 맞지 않다. 세계 경제는 현재 변화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에 적응하고 강점을 활용하며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구축해야 한다.

동방으로의 회귀는 혁신적인 발전을 요구한다. 풍부한 천연자원, 미개발된 인프라, 노동력 부족, 제한된 시장, 그리고 소규모 가공 및 과학 산업을 고려하면서도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번영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극동 연방관구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토크가 도쿄, 상하이, 홍콩을 비롯한 지역 및 글로벌 금융, 기술, 혁신, 물류 허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다. 에너지 및 국방 분야를 제외하면 러시아는 이미 안정적인 구조, 명확한 노동력 분배,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갖춘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러시아는 아시아 태평양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뛰어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 유치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개방성 확대, 유리한 투자 환경, 신뢰할 수 있는 법적 보장, 적절한 정부 조치, 합리적인 조세 정책, 효율적인 통관 절차, 실용적인 노동 정책, 그리고 외국 자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국가 정책은 일관되고 조율되어야 하며, 재계(국민)의 시장 기반 경제 협력 규칙에 대한 인식 제고도 필수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방으로의 회귀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안겨주었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로 외국인 투자가 크게 감소했다. 서방의 투자 통로가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투자 또한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서방의 제재 위협으로 많은 국가와의 과학기술 협력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양자 무역 또한 큰 제약을 받고 있으며, 금융 결제에도 심각한 어려움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지정학적, 지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동방으로의 회귀”라는 러시아의 당초 구상에 악영향을 미쳤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방으로의 회귀”과정의 지리적 범위를 축소시켰다. 주요 아시아 경제·기술 강국인 일본과 한국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들 국가들이 미국에 이어 러시아에도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들 국가와의 무역 협력이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더 이상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 과정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고, 이는 러시아의 전략에 큰 어려움을 야기했다.

둘째, 러시아는 북극해 항로와 관련된 일부 중요 프로젝트의 규모를 축소해야 했다. 북극해 항로 개발이 그 예이다. 북극해 항로는 동아시아로의 항로 전환에 있어 핵심 프로젝트로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동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북극해 항로는 인도양(수에즈 운하)을 경유하여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보다 훨씬 짧아 운송비와 배송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쇄빙선 없이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는 항해 기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해 항로를 따라 교통 인프라가 완성되면 국제 해운 시스템이 크게 변화하여 러시아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지정학적, 지경제적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러시아 제재로 유럽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차단되면서 이 항로의 기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현재 북극해 운송은 무르만스크까지만 운행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중국 간 무역에는 도움이 되지만 유럽에는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는 인프라 구축 및 쇄빙선 건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새로운 유라시아 해상 교통로로서의 북극해 항로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의 회복은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가 개선된 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에서의 중국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는 단순히 중국으로만 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전략에는 인도, 베트남,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여러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도 포함된다. 일본과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여 일시적으로 러시아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러시아는 현재 세계 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조정하는 동시에 아시아와의 관계를 다각화하고자 한다. 동방으로의 회귀는 감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있지 않다. 동방으로의 회귀는 러시아의 국가 이익과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국가 전략이며, 아시아나 중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일부에서는 이를 중국과의 우호 관계로 해석하는데, 이는 감정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양국 간 우호 관계가 러시아와 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선회가 향하는 종착지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은 명목 GDP 기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양국 국경 지역은 더욱 강화된 경제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모든 요인으로 인해 중국은 러시아의 동방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경제 협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간 무역 관계는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은 14년 동안 러시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였지만, 양자 무역은 여전히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 중국은 러시아 에너지 수출의 최대 시장 중 하나이다. 2023년 러시아는 중국에 석유 1억 700만 톤과 LNG 800만 톤을 수출했다. 2025년까지 러시아의 대중(對中) 가스 수출량은 380억 세제곱미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또한 북극 개발과 북극해 항로의 핵심 참여자이다. 러시아의 야말 LNG 프로젝트에 수십 개의 중국 기업이 참여하면서 중국은 두 번째로 큰 주주가 되었다.

북극해 항로는 상당한 인프라 개발과 쇄빙선, 그리고 화물 관리 업체들을 필요로 한다. 중국은 이 모든 분야에 참여하고 있으며,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인프라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 정보통신기술(ICT), 디지털 경제, 전자상거래 등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주자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확대는 러시아 동방 지역 발전에 필수적이다. 중국은 또한 러시아 농림수산물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 지역의 경제적 교류는 매우 긴밀해졌으며, 이는 양국의 국경 지역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가 이제 기정사실화된 국가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여론은 나뉘어져 있다. 한때 유행했던 “중국 위협론”, 특히 인구 증가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사라졌다. 일부 두려움은 남아 있지만, “중국 위협론”은 더 이상 지배적인 이슈는 아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한두려움은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중국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중국이 미래에 러시아의 동맹국이 될지 적이 될지에 대한 우려는 양국 관계의 장기적인 방향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또 다른 요인은 러시아의 동방으로의 회귀와 상충되는 뿌리 깊은 서구주의 이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미래가 서구에 있다고 믿으며, 중국은 서구와 동등한 기술, 장비, 자본을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러시아가 서구에 의해 배제된 이후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중국의 역할은, 러시아가 얻을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여론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우려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일부는 이로 인해 러시아가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 “원자재 공급처”, 또는 중국 경제의 속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 에너지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증가가 러시아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며,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잠재적 갈등에서 러시아가 중립성과 행동의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2024년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한 사회자는 중국 대표에게 중국 기업들이 중국에 남아 러시아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질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이 다양하게 주장되고 있지만 공통된 배경을 공유한다. 바로 러시아와 중국 간 불균형적 발전 현실이다. 1991년 소련 연방 붕괴 이후 형성된 러시아-중국 관계의 주요 특징은 중국의 성장 속도가 러시아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이후 300년이 넘는 양국 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은 국력 면에서 러시아를 앞지르게 되었다. 2023년 러시아의 GNP는 2조 200억 달러였고, 중국의 GNP는 17조 7,900억 달러로 8배 이상 높았다. 러시아의 1인당 GDP는 13,800달러로 중국(12,600달러)보다 약간 높았다. 중국군은 러시아군보다 병력 수가 많고, 현대식 무기로 무장되어 있으며, 군사비 지출도 훨씬 많다. 2022년 중국의 국방비 예산은 약 2,922억 달러로 러시아(860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중국의 국방비 예산은 미국의 8,770억 달러보다는 훨씬 적지만, 러시아보다는 3배 이상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국방 예산은 매년 증가해 왔는데, 이는 주로 특수 군사 작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달러 기준으로 볼 때, 루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이러한 증가세는 눈에 띄지 않았다. 현대적이고 유능한 군대를 구축하려면 적절한 군사비 지출이 필수적이다.

기술 경쟁은 현대 국가 간 경쟁의 핵심이다. 중국은 세계 질서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방대한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은 강력한 투자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여러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꾸준한 발전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투자, 기술, 장비 역량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 간 경제 협력 규모 또한 상당하며, 러시아 대외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양국 간 경제 협력이 양국 모두에게 점점 더 유익하고 중요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와 중국 정부 모두 양국 간 경제 협력의 규모에 대해 결코 우려를 표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국 모두 경제 협력의 잠재력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유럽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러시아에 제공할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유럽은 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없다. 유럽과 중국은 각자 그 경제적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추세적으로 보면 중국은 자동차, 고속철도, 통신 시스템, 대체 에너지원, 컴퓨터, 휴대폰 분야에서 유럽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일부 특정 중국 제품만 대체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면 투자, 장비, 기술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필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수출 및 서비스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2023년 러시아는 대(對)중국 에너지 수출로 905억 달러를 벌어들여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다.

경제 협력은 상호 의존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국가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다. 양국 간 상호 의존성이 높을수록 상호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이로 인한 혜택도 커진다. 양국 관계 간의 상호 의존성 수준은 다양하다. 각 국가들이 대외 관계를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반드시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주요 추세는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세계화, 지역 통합, 그리고 협력 메커니즘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들은 상호 이익을 위해 평등을 기반위에서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유대감을 강화하고자 한다.

대국과 소국 사이에는 실제로 힘의 격차가 존재한다. 동일한 무역 규모라도 경제 규모에 따라 그 영향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불평등을 의미하거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속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한 경제권 간의 경제 관계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다면 진정한 경제 협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150개국 이상의 국가의 최대 또는 주요 무역 상대국이지만,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중국 보다 경제 규모가 작다. 만약 이들 국가 중 어느 나라도 중국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면, 세계 4위 또는 5위 경제 대국인 러시아가 어떻게 중국의 속국이 될 수 있겠나?

과잉 의존 문제는 복잡하고 상대적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양자 관계를 강화하고 이익을 증대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주권 상실이나 국가 안보 우려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 국가의 이해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에 “과잉 의존”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경제적 독립이 안보에 필수적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완전한 자치권이 추구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에서 다자 관계의 목표는 과도한 의존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더욱이 과도한 의존이 발생하는 조건은 다양하며, 항상 한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과잉 의존은 양국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하고 국가들이 경제적 관계를 “무기화”하여 제재와 갈등의 도구로 만들 때에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가장 분명한 실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부과된 서방의 제재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 경제 관계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중국은 러시아의 대외 무역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러시아의 총 대외 무역액은 7,102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 중 중국과의 무역액은 2,400억 달러로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양국 간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 분야는 에너지이다. 2023년 러시아는 2억 3,400만 톤의 석유를 수출했는데, 이 중 1억 700만 톤(45%)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같은 해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량은 1,390억 세제곱미터였는데, 이 중 340억 세제곱미터(약 25%)가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가 늘 안정적인 것은 아니며, 현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유럽 간 무역의 급격한 감소, 러시아의 전체 대외 무역의 상당한 감소,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의 급격한 증가를 반영한다. 주요 요인으로는 러시아 에너지 수출 구조의 급격한 변화, 특히 천연가스 수출 감소, 무역 흐름의 구조적 변화,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역할 축소, 그리고 러시아의 유럽 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 등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의 대외 무역 및 에너지 수출에서 과거 유럽이 차지했던 역할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와 중국 모두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서 외부 세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국가 안보와 관련되어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는 수출 시장 다각화를, 중국은 수입원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상호 의존성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경계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과도한 의존”이라는 개념은 현재의 러시아-중국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현재 양국 간 경제 협력은 객관적인 조건과 내부적 필요에 기반하며, 무엇보다도 양국 모두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럽 파트너를 잃은 러시아는 동방으로의 회귀 과정을 시급히 완료하고 아시아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에너지 부문에서 더욱 그러하다.

현재 러시아의 정책 의제는 규모 축소보다는 아시아 국가들, 특히 에너지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일반 재화와 달리 에너지는 국가 경제 성장과 국민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의 수급은 일방적인 의존이 아닌 양방향 의존을 형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도한 의존에 대한 우려는 대체로 기우이다. 일반적으로 수출국은 수입국보다 더 적극적이다. 역사적으로 에너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데 있어 수출국이 더 유능했다.

중국은 어떤 나라에도 “큰 형”이 될 의도가 없으며, “작은 형”을 둘 의도도 없다. 과잉 의존이라는 개념은 중국의 정치 철학과 정책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다. “형제”라는 개념도 현대 중국의 정치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결코 후배의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랑스러운 국가이다.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그 경제 규모와 관계없이 평등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 중국은 결코 주변국을 무시하거나 연공서열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강대국인 러시아가 어떻게 중국의 ‘동생’이 될 수 있을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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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published in: Russian International Affairs Council (RIAC) Original Source
Zhao Huasheng

Zhao Huasheng

Zhao Huasheng은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이자 베이징국제대화클럽 수석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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