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협력기구(SCO)는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외교적 이정표에 걸맞은 각종 의전과 함께 창설 25주년을 기념했다.
9월 1일 열린 행사에는 21명의 국가 및 정부 수반이 참석해 공식 ‘가족사진’을 촬영했고, 두 페이지 분량의 비슈케크 선언을 채택했다. 이와 함께 28개의 추가 협정도 체결됐으며, 여기에는 “원자력 안전과 핵안보 분야의 다자간 협력 강화”도 포함됐다.
겉으로 보기에 SCO는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을 대표하고, 세계 GDP의 약 23~25%를 차지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자신감 있는 블록처럼 보였다.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그러나 실제 모습은 훨씬 덜 인상적이다. 출범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SCO는 여전히 주로 정상들이 여러 개의 양자회담과 개별 합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장에 가깝다. 그런 기능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SCO가 한 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능이 있다. 회원국들이 회의장 안으로 가져오는 갈등을 중재하는 능력이다. 하물며 회의장 밖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하는 능력은 더더욱 없다.
SCO가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할 때조차 그 역할은 훨씬 제한적이었다. 가장 강력한 회원국들이 양자 협상을 진행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양자주의의 수단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종종 매우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상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대개 국내 정치적 소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즉, 자신을 국가의 전략적 이익을 단호하게 지키는 지도자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의 본회의 연설을 보자. 같은 테이블에 파키스탄 총리 셰바즈 샤리프가 앉아 있는 상황에서 모디는 테러 대응에 있어 “이중 잣대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고, “테러는 누구에게도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테러 자금 조달, 모집, 급진화, 안전지대 전체 생태계”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디는 누구를 겨냥한 발언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직접 거론할 필요조차 없었다.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인도 국내 청중도 이것이 파키스탄의 초국경 테러 네트워크 지원 의혹을 비판할 때 인도가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SCO 정상회의가 모디에게 제공한 또 하나의 이점은 이런 비판을 샤리프 바로 앞에서 직접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디는 이어 두 번째 메시지를 내놓았다. 그는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이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키스탄이 관리하는 카슈미르를 통과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회랑, 그리고 인도가 자국 영토라고 간주하는 지역에 대한 파키스탄의 영유권 주장 모두를 겨냥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었다.
이러한 발언은 모디가 국내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의 서방 파트너들은 이를 러시아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를 자처해 온 인도의 전통적인 역할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도는 자신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모디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도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비공개가 아니라 직접, 공개적으로 전달됐다.
모디는 두 사람의 익숙한 포옹 이후 푸틴에게 “전쟁 속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인류를 후퇴시킨다”고 말한 뒤, “끝없는 전쟁에서 전쟁의 종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와 러시아의 양자관계는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에 비해 훨씬 건설적이고 덜 적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발언은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 특히 SCO가 부분적으로는 회원국들이 서방의 압박에 맞서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연대를 제공한다는 개념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모디가 푸틴에게 공개적으로 전쟁 종식을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모스크바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진행했을 당시에도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사망한 것을 두고 강한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지지를 찾아 분주한 푸틴
푸틴은 비슈케크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 가운데 가장 바쁜 양자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정상회의 이틀 동안 그는 모디, 중국의 시진핑,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뿐 아니라 타지키스탄,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대통령들과도 만났다. 여기에 SCO 비회원국으로 참석한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의 정상들과도 회담했다.
겉으로 보면 상당히 인상적인 외교 일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반드시 강함의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이후 그의 대면 정상외교는 SCO와 같은 행사, 그리고 때때로 BRICS 정상회의와 같은 장소로 상당 부분 제한되고 있다. BRICS는 처음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중심으로 출범한 신흥경제국 협력체였지만 이후 규모와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
스스로를 강대국으로 내세우는 국가의 지도자에게 이는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가 최근 시리아에서 베네수엘라, 말리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영향력과 협상력 측면의 후퇴를 경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 정상, 세 개의 서로 다른 의제
반면 시진핑은 매우 선택적인 행보를 보였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그의 유일한 양자회담은 푸틴과의 회담이었다.
이는 중국이 SCO 자체를 개별 국가들과의 직접적인 양자 채널이나 BRICS 같은 다른 다자 협의체보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행사로 보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시진핑이 정상회의 직후 곧바로 카이로로 향했다는 점이다. 이는 10년 만의 첫 이집트 국빈방문이었다. 이집트는 2024년부터 확대된 BRICS의 회원국이며, 다음 BRICS 정상회의는 9월 12일 뉴델리에서 개막한다.
결국 SCO를 이끄는 이른바 ‘빅3’ 정상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각자 서로 다른 구체적인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SCO가 하나의 집단적 목소리로 기능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SCO가 의미 없는 조직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상회의는 회원국 간 양자 접촉과 각종 협정을 만들어내고, 회원국들이 국내외 청중에게 비서방 연대의 이미지를 보여줄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비슈케크에서 열린 25주년 정상회의가 남긴 진짜 메시지는 정상들이 서명한 선언문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SCO의 세 핵심 지도자, 시진핑·모디·푸틴이 같은 무대를 이용해 서로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의제를 추구했고, 이들을 갈라놓는 어떠한 핵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