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는 세계 냉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의 ‘전투 조율’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이 두 전선은 러시아와 중국을 협공하고 또한 이들 두 국가가 미국이 제정한 “규칙”을 거부하는 세계 질서를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핀란드에서 터키에 이르는 서부 전선에서는 이미 연속적으로 군사 기지들이 만들어졌으며 우크라이나에서 공개적인 군사 분쟁이 발생했다. 수십 년 동안 러시아와의 대결을 준비해온 나토는 러시아에 대항할 서방 국가와 군대를 조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부 전선에서도 서부 전선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시나리오가 반복되지만 몇 년의 시차가 있다. 중국에 대한 “건설적 관여”의 기대가 실패한 후, 중국과의 공개적인 대결이 2018년 시작되었다. 2018년은 무역, 홍콩의 “색깔 혁명”, 대만에 대한 대규모 무기 공급이 시작된 해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과 방위협정을 맺었지만, 태평양 지역에는 나토와 같은 조정 기구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서방 세계의 “책임 영역”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급하게 군사 블럭인 오커스(AUKUS: 호주, 영국, 미국)가 결성되었고 군사-외교 조직인 쿼드(QUAD: 호주, 인도, 미국, 일본)가 발족되었다. 히로시마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의 반중(反中) 세력 전선 건설 과정에서 지금까지 거둔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가 논의되었다. 오커스와 쿼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하여 두 조직의 회원국 지도자를 만나는 동안 새로운 수준의 조정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호주 캔버라로 날아가지 않았다. 왜 바이든이 호주에 가지 않았느냐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모디 인도 총리가 자신의 나라를 서구 조직에 더 깊이 끌어들이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개선 행진은 바이든이 히로시마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모디 총리와의 불협화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관련하여 G7에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 나타났으며 이는 공식 성명서에 반영되었다.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이별”은 G7 유럽 회원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이 합의한 규칙의 요구 사항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의자에 앉아” 중국과 수익성있는 관계를 유지하려는 유럽의 욕구는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욕구는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원하는 고위급 방문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과 베이징 지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고안된 그들의 성명서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의 정치 캠페인은 중국에 해악을 주거나 중국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G7 공식 성명서에도 G7 은 중국과의 “이별”을 원치 않으며 “내부 문제에 집중” 하지도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동부 전선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열망은 서부 전선에 대한 중국의 “반격” 때문에 완전히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중국의 새로운 “반격”은 중국 특사 리후이 대사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들의 공식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알아보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중국은 리후이 특사가 완전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정보를 수집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이외에 폴란드 바르샤바,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브뤼셀을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리후이 특사의 순방 몇 주 앞서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 왕이 공산당 외교위원장, 친강 외교부장이 유럽을 방문했고, 시진핑 주석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중국은 나토의 “공세”에 대응하여 이러한 “반격”을 시작했다. 나토의 책임 영역은 이미 공식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일본 도쿄에 나토 지역 본부가 개설될 예정이다. 중국인은 1936년 일본의 반(反)코민테른 조약 가입과 현재 진행 중인 일련의 움직임을 유사한 것으로 평가한다. 1937년 대담해진 일본군은 중국 청 제국과 전면전을 벌여 몇 달 만에 베이징, 상하이, 우한, 난징을 점령했다. 소련의 외교, 군사, 재정 지원이 중국의 항복을 막았고, 중국은 이미 지정된 시간인 1941년 8월 29일 일본의 소련공격을 막았다. 일본 제국주의군은 중국을 완전히 점령하기 전까지는 중국 과 소련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처음으로 중국과 소련이 상호 연결되고 상호 이익이 되는 전략적 전선이 만들어졌다.
이제 “동, 서부 두 전선”의 상황이 반복된다. 러시아의 군사적 성공은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개최와 동시에 일어났다. 서부 전선은 다시 동부 전선을 지원했다. 이제 미국 국방부는 대만 주변 작전 계획을 다시 한 번 분석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 조율’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시진핑-푸틴 합의는 현재 양국 장관급 인사들에 의해 이행되고 있다. 리상푸 중국 국방부 장관과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이자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서기인 천원칭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와 수백 명의 부처장 및 부서장, 주요 기업가들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비록 그들 모두가 중국에서 며칠 만에 주요한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에 잠시 머물러 자신의 눈으로 직접 “중국의 경제 기적”을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상호 교류의 중요성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동방으로 귀환”해야겠다는 생각이 서방과의 “좋았던 옛날”로 돌아갈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아직 완전히 없애지 못한 러시아의 정치 엘리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2023년 5월 18-19일 실크로드의 고대 수도인 중국 시안에서 열린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담도 서구의 “봉쇄”에 대한 중국의 반격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 서구의 나토와 G7 정상회담 그리고 또 다른 반대편에 상하이협력 기구와 브릭스 지도자들의 새로운 회의를 목도하고 있다. 이들 기구들은 모두 새로운 글로벌 기구의 형성 논리에 적합하다. 러시아와 중국 중 한 국가를 공략하는 서구 군대의 집중을 방지하는 핵심 역할은 양국의 “전투 조율”에 의해 수행된다. 그것은 양국의 국익에 부합하고 그래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