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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우크라이나 정책

이탈리아는 최고, 바티칸은 실패?

1945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첫 번째 침략 전쟁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교황청이라는 두 글로벌 주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Sergio Mattarella) 대통령과 조르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의 지휘 하에 있는 이탈리아가 우크라이나와 지속적인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교황청의 현재 행로에 대한 비판이 가톨릭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원했던 러시아 정교회와의 화해가 우크라이나의 미래 운명보다 더 중요한가?

조르지아 멜로니,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의 우파 동맹이 2022년 10월 집권했을 때 일부 유럽 국가 정부에서는 이탈리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불신은 대서양주의자로 알려진 새로 선출된 총리이며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푸틴의 팽창주의 야망에 반대의 입장을 밝힌 조르지아 멜로니와 그녀의 당인 “이탈리아 형제들당” (Fratelli d’Italia)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두 동맹인 Lega와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로 향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Lega와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두 정당 모두 국제적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Lega 지도자인 마테오 살비니와 같은 – 그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과 유사한데 – 반유럽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이념적으로 러시아와 가깝다. 부르주아 보수주의 정당인 전진 이탈리아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화해에 대한 두려움을 촉발한 것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오랜 개인적인 우정이었다.

친(親)러시아라는 논란은 2022년 가을 연립 정부 수립 협상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크렘린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수용하여 동맹국들 사이에 심각한 짜증을 불러일으킨 것과 같은 상식에 벗어나는 여러 발언으로 인해 더욱 촉발되었다. 당시 그의 보좌관이었던 안토니오 타자니(Antonio Tajani)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나토 및 유럽 인민당 위원장들과 회담을 갖고 이탈리아의 새로운 우파 정부가 결코 유럽 연합의 공통 노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키기 위해 빨리 브뤼셀로 날아가야 한다고 느꼈다.

베를루스코니의 무분별한 행동과 살비니의 물수제비

2022년 9월 조기 선거에서 역사적으로 부진한 결과(8% 득표)를 낸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레가(Lega)의 경우 상황은 달랐다. 따라서 조르지아 멜로니는 경쟁자인 마테오 살비니를 손에 쥐고 이 잠재적인 말썽꾼으로 부터 충성심을 요구할 수 있었다. 당시 임시 정부 수반은 연립 정부 수립 협상을 결렬시키겠다고 공개적으로 멜로니와 살비니를 위협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 정부는 없을 것”이다. 멜로니는 가슴 가까이에서 카드를 사용했고 결국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자신의 줄에 서도록 만들었고, 베를루스코니는 결국 그의 친러시아 발언을 철회하기 위해 “이탈리아 형제들당” 본부를 순례해야 했다. 이것은 전진 이탈리아의 대표인 베를루스코니에게는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 못할 굴욕이었다. 베를루스코니가 사망한 이후로 그의 무분별한 행동은 중단되었다: 안토니오 타자니 외교 장관의 지휘 아래 전진 이탈리아는 분명히 서방 동맹국의 편에 서 있으며 유럽 인민당과 입장을 같이 한다.

정부에 대한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멜로니 총리는 기독민주당 출신이자 반(反)러시아 강경파로 알려진 기도 크로세토(Guido Crosetto)를 국방장관으로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나토 국가 중 하나가 푸틴에 대항하는 공동체를 떠날 수 있다는 서방 국가들의 두려움은 잠잠해졌다.

멜로니 총리가 푸틴 대통령의 친구들에게 반박하다

멜로니 총리는 추가 신호를 보냈다: 2022년 6월 16일 세 명의 유럽 지도자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전(前) 이탈리아 총리,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및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우크라이나 키예프로의 기억에 남는 공동 여행은 매일 쏟아지는 폭탄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생생했다. 그런 가운데 멜로니 총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탈리아의 확고한 유대를 보여주기 위해 2023년 2월 키예프로 첫 해외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이전에도 여러 국제 정상회담에서 만난 적이 있어 두 사람은 잘 통했다. 이후 두 사람은 모임 때마다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우정을 자랑해 왔다.

멜로니 총리의 비호 아래 이탈리아에서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탈리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독일과 함께 유럽의 남동쪽 측면과 루마니아에서 흑해의 영공을 감시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또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정책을 확고히 고수하고 있다: 유럽 연합의 제재 목록에 있는 러시아 신흥재벌에 속한 수십 개의 계좌, 부동산, 선박 및 예술 작품이 이탈리아 국가 금융 경찰인 “Guardia di Finanza”에 의해 압수되었다. 그리고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서 신속하게 해방시키기 위해 일련의 아프리카, 아랍 및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 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전임 드라기 총리의 노선을 유지해 왔다.

지난 11월 베를린 방문 중 멜로니 총리와 숄츠 독일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첫 번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국가 정상 및 정부 수반 영상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는 푸틴 대통령도 참석했는데, 멜로니 총리는 빠르게 위트를 보냈다. 크렘린 통치자인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빠른 종식을 요구하자 멜로니 총리는 즉시 이렇게 반박했다: 전쟁 종식은 “즉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러시아 군대를 즉각 철수하는 것이다.” 수낙 영국 총리는 멜로니 총리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힌 멜로니 총리를 치켜 세웠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서방의 가장 가까운 동맹자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직이 가진 권위와 끊임없는 인기를 바탕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세한 공식 발표를 통해 이탈리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을 설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높은 군비 지출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의 개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해 불평하는 좌파와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비판을 잠재운다. 외교·안보정책 문제에서 헌법에 따라 군 총사령관이기도 한 마타렐라 대통령은 지금까지 멜로니 총리를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교황은 러시아의 친구인가?

그러나 티베레 강 건너편 바티칸에서는 물음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론, 가톨릭 교회의 수장은 언제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순교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을 애도하고 전쟁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해 왔다. 교황청이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인도적 지원을 조직하고 이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교황청은 가능한 협상을 통한 해결책을 중재하고 탐색하기 위해 배후에서 모든 것을 시도했다. 따라서 교황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공격자와 피해자로부터 “도덕적 등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교황은 실제로 “정치적 등거리”에 대한 비난을 참아야 했다. 교황청은 전통적으로 중립 정책을 고수해 왔는데, 이런 입장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초당파적 중재자로서 교황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도덕적 권위를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청은 국제 무대에서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교황청 인사들은 성공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점수를 얻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관인 교황청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많은 관찰자들에게 문제는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나서야 교황이 처음으로 공격이 일어난 이름을 지정하고 러시아를 침략자로 공개적으로 지정했다. 다른 많은 국가 원수들과 마찬가지로 교황은 아마도 2022년 2월 24일까지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탱크에게 키예프를 향해 진격하도록 명령하여 1945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렘린 통치자인 푸틴은 지난 몇 년 동안 프란시스코 교황을 직접 바티칸에서 세 번이나 만났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침략자들에게 관대하고 “러시아를 이해하는 사람”인가? 많은 바티칸 관찰자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계 반대편에서 온” 교황(프란치스코가 선거일에 말했듯이)이 그의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와는 유럽 역사와 유럽의 민감성에 대해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어렸을 때 사회-독재주의적인 페론주의의 영향을 받은 아르헨티나 출신 Jorge Mario Bergoglio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름)는 서구 질서 모델에 대해 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최초의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그의 경험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주장에 대한 그의 편견을 감소시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가톨릭 청년 모임의 영상 링크를 통해 자신이 밝혔듯이, 러시아 역사는 물론 문학과 음악 등 러시아 고전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교황과 파롤린(Parolin) 교황청 국무원장 사이의 긴장

교회 정책 측면에서 87세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교황으로 당선된 이후 스스로 세웠던 두 가지 야심 찬 목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과의 이해와 러시아 정교회와의 화해이다. 그는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엄청날 정도로 관대했다. 그는 이들 국가에서 일어나는 가톨릭 성직자를 포함한 인권 침해와 탄압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악명 높은 비평가들 사이 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의 최고위층에서 반복적으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전, 이미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있던 Bergoglio를 잘 알고 그를 높이 평가했던 바티칸 외교관이자 분쟁 전문가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임명했다. 파롤린 추기경의 도움으로 로마 주교는 2016년 2월 처음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만났다. 오늘날 이전 절친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와 파롤린 국무원장은 불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바로 푸틴의 전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에 어떤 무기 공급도 거부해 우크라이나가 국제적으로 보장된 자위권을 간접적으로 부인함으로써 여러 곳으로부터 우려를 자아냈다. 국무원장인 파롤린 추기경과 영국 출신 교황청 국무원 “외교 장관”인 폴 리처드 갤러거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러한 교황의 진술을 정정하고 자신들의 상사의 발언도 정정했다. 물론 파롤린과 갤러거 두 사람 모두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로서 자신의 영토를 보전하고 수호할 권리가 있으며, 군사 장비와 무기 공급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시릴(Kyrill) 카드”

푸틴 대통령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다른 카드를 사용했다: 바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인 시릴(Cyril)과의 그의 개인적인 관계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시릴은 크렘린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교황에게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시릴 카드”를 사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마도 예수회의 재치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정치적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파롤린과 갤러거의 경고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릴은 여전히 양치기이다!” 예상대로 “시릴 카드”가 실패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크렘린의 제단 소년”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쓰라린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 왔다. 교황이 “러시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키예프에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친(親)러시아라는 의혹은 구체적인 행동보다는 교황의 부작위로 인해 더욱 촉발되었다. 지금까지 교황은 평화를 위한 셀 수 없이 많은 호소를 했지만 푸틴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는 위대한 전임자의 말을 빌렸을 수도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주일 삼종 기도회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대한 계획된 공격을 자제할 것을 열렬히 간청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사라예보가 수개월 동안 포위되어 인도주의적 재앙이 촉발되었을 때,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폭격을 당한 보스니아 수도의 대주교인 당시 48세의 Vinco Puljic을 그 나라 역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래로 로마에서는 새로운 보라색 지도자(추기경)를 임명하는 세 번의 추기경 회의가 열렸다. 그리스-가톨릭 대주교인 키예프의 Svyatoslav Shevchuk 가 적합한 추기경 후보였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아무런 소득없이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교황의 외교적 자제

프란시스코 교황은 너무 늦게 고위 특별 중재자를 임명했다. 그러나 특별 중재자로 임명된 마테오 주피 추기경의 모스크바, 키예프, 워싱턴, 베이징 간 셔틀 외교는 이제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우크라이나는 바티칸 외교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러시아는 죄수 교환과 같은 인도주의적 활동에 있어서 서방 세계의 대표자로 추정되는 교황청 보다는 ‘남반구’의 대표로서 아랍에미리트의 중재를 더 신뢰하고 이에 더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프란시스코 교황이 지금까지 키에프로의 어떤 방문 초대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모스크바를 먼저 방문할 수 있는 경우에만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에프로 여행할 것이라는 얘기만 반복한다. 가까운 측근 추기경들조차 간파할 수 없는 교황 측의 이 기이한 자제 뒤에는 비밀 계획이 있거나, 아니면 외교적 계단식 농담일 수도 있다: 푸틴은 교황의 양국 방문 여행에는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다. 설사 푸틴이 관심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교황의 모스크바 방문은 아마도 푸틴 대통령의 오랜 재임 중 가장 큰 선전 거리가 될 것이다. 몇 달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은 키예프가 더 이상 바티칸 중재 임무에 관심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위기 상황에서 교황청 외교에 대해 큰 뺨을 때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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