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마스는 카이로에서 협상되어 온 휴전 제안을 수용했다고 발표했는데 이집트는 수년간 가자 지구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아랍 국가인 이집트는 안보 문제와 국내 제약을 고려한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목표는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정책으로 인해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외교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가자 지구 상황은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랍 여론의 압력에 직면한 이집트의 엘시시 정권은 가자 지구 상황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피하고 이스라엘 앞에서 무기력함을 감추고자 하지만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
8월 18일, 미국의 계획에 따라 카이로에서 진행된 협상에 참가해 온 하마스가 수용한 휴전 발표는 이스라엘이 수행한 가자 지구 전쟁에서 이집트 당국이 중재자 역할을 성실히 임했음을 보여준다.
하마스와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그 동안 카타르의 중재 활동이 언론의 관심을 더 많이 받았지만, 이집트의 중재자 역할도 여전히 중요하다.
중재자로서의 중요하고 역사적인 역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창설이나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협정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중재 협상을 해 온 능력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1981-2011)은 오슬로(1993)협정 체결 이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대부분의 협정이나 합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제2차 인티파다(2000-2005) 기간 동안에도 이스라엘과의 협상 채널 유지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하마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하고 2007년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 이집트는 2008-2009년, 2012년, 2014년, 그리고 2021년 분쟁 기간 동안 하마스와 파타, 그리고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양자 협상에 관여했다. 이 분쟁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었다.
무슬림 형제단 소속이었던 모하메드 모르시 대통령(2013년)이 축출된 후 2014년 군부 출신 압델 파타 엘시시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슬람주의 운동과 가까운 하마스와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이집트 정보기관은 하마스와 은밀한 연락 채널을 유지했고 이스라엘 정부와 마흐무드 압바스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간 중재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카타르와 미국(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 주체)과 함께 이집트는 도하에서든 카이로에서든 중재 협상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되었다. 세 나라가 공동으로 발의한 초기 합의는 2025년 1월에 체결되었다. 이에 앞서 이집트는 2024년 12월 파타와 하마스 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협정 체결을 위해 일했다.
이스라엘의 팽창주의에 맞선 레드라인?
최근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정책에 맞서 이집트는 가자지구 상황에 대한 여러 성명을 발표했다. 이집트 당국은 유엔이 위임한 국제 개입군 창설을 지지하는 한편, 하마스의 무기를 이집트로 이전하려 했다는 소문은 부인했다.
이집트 라파에서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교장관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대량 강제 이주를 레드라인이라고 부르며 강제 이주에 대한 거부 의사를 재확인했다.
앞서 엘시시 대통령은 가자 지구 전쟁을 “기근과 집단 학살의 전쟁”이라고 비난하며 모든 강제 이주 계획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집트는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J)에 제소한 집단 학살 협약 위반 소송을 지지하지만, 그 당사국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엘시시의 강경 발언은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작전 가속화라는 이중적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야망은 ‘2국가 해법’의 실현 가능성을 끝장낼 수 있으며, 그 결과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집트로의 대규모 이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집트와 카타르의 중재자들이 카이로에서 협상해 만들어 낸 휴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윗코프의 계획을 전반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6월 초 미국이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하마스의 휴전 이행 제안을 거부했던 상황에 비하면 실질적인 진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이 획기적인 돌파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휴전 선언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아직 협상단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다.
하마스가 수용한 휴전 선언은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8월 8일 가자지구 장악 계획을 승인하고, 유엔이 여러 차례 경고 후 가자 지구를 기근 상태로 선포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이집트이 발표한 여러 성명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근 제시한 “대이스라엘” 비전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다. “대이스라엘” 비전은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성경적 국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있는 영토와 시나이 반도 일부를 포함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 지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다소 미미한 수준이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아랍 국가나 아프리카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검토해 왔다(이와 관련된 협상은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시나이 반도: 이집트의 핵심 안보 문제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필라델피아 회랑”과 14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봉쇄 유지 및 완화 모두)에 거의 문자 그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핵심 안보 행위 주체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의 이집트 역시 가자 지구 주민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비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국경 너머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전쟁은 인종 청소, 아니 어쩌면 집단 학살과도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이집트와 관련해 제기되는 불만은 수없이 많은데, 특히 라파 국경 검문소에서 팔레스타인 영토로 향하는 물자 공급이 차단된 문제, 가자 지구 난민의 치안 문제(전쟁 발발 이후 약 1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집트로 피난을 왔으며, 라파 국경 검문소를 “조율, 관리”하는 할라(Hala) 회사에 고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카이로와 시나이 반도에서 벌어지는 가자 지구 지지 시위의 치안 관리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 전인 1948년부터 1967년까지 가자 지구를 통치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이후 카이로의 가자 지구에 대한 입장은 이집트와 가자 지구 국경이 위치한 광활한 사막 지대
1967년 6일 전쟁(가자 지구와 같은 시기)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는 1982년 이집트에 반환되었다. 그러나 기반 시설이 부족한 저개발 지역인 시나이 반도는 수십 년 동안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가자 지구 사이의 인신매매 지역이었다.
2011년 이후, 테러 조직 이슬람 국가(IS)에 가담한 지역 지하디스트 운동이 시나이 반도에서 번창했지만,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낸 “더러운 전쟁”(3,200명 이상의 치안 부대원 전사, 민간인 사상자 수는 알려지지 않음) 이후 이 운동은 이집트군에 의해 점차 진압되었다. 엘시시 대통령은 2023년 이집트의 승리를 선언했고, 군사 작전은 2019년에서 2020년 사이에 종료되었다.
이집트에게 있어 가자 지구 관리는 주로 안보와 관련된 문제이다. 인신매매를 억제하고, 하마스보다 더 급진적인 무장 단체, 그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인 이슬람 지하드의 침투를 막고,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이집트 정부는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한 물적 역량이 부족하다. 물적, 물류 적 문제 이외에도 이집트 지도부는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 정착이 하심 왕국의 ‘검은 9월’ 사건 발발과 백향목의 땅 이집트 내전으로 이어졌던 레바논과 요르단의 사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집트의 입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8년 이미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시나이 반도로 강제 이주한 사건은 국가 주권 침해로 간주되었으며, 이러한 사태의 재발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러나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비극에 직면하여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지구 봉쇄에 참여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엘시시 대통령은 이러한 비난에 직접 대응하며, 이스라엘이 라파 국경 검문소를 반복적으로 폭격했으며 라파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2005년 가자 지구에서 철수했던 이스라엘은 2024년 5월 필라델피아 회랑을 다시 장악했다. 이집트 언론은 이집트 정부의 주장을 반영하며 이집트에서 파견된 인도적 지원 호송대를 집중 조명했다. 2023년 10월 이후 4만 5천 대가 넘는 트럭, 즉 인도적 지원의 70%가 가자 지구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이 국경 검문소는 이스라엘의 동의와 안보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적 제약과 내부적 압력 사이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이집트는 ‘2국가 해법’의 틀 안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찬성한다. 이는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이 1978년 11월 크네셋 연설에서 밝힌 역사적 입장이다.
이러한 이집트의 입장은 이집트의 외교적 행동에도 반영되었지만, 2008년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인 전쟁은 이집트의 약속이 제한적임을 부각시켜 왔다. 그러나 엘시시 대통령에게 이러한 이집트의 약속은 국내적 제약을 동반한다. 가자지구의 절박한 상황은 이집트와 중동 지역 전역에 널리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강한 연대감을 야기한다.
이집트 정부는 이 부분에서도 모순에 빠져 있다. 많은 이집트인들에게 하마스는 테러 조직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운동 조직으로 여겨진다. 실제 이집트조차도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는 달리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집트 당국은 엘시시 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모든 시위를 탄압하고 있다. 거리 시위에 대한 이러한 당국의 불신은 2011년 혁명으로 이어진 시위 활동가들의 행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지하는 운동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한편, 이집트 대통령과 정부는 여론의 민감성을 고려하여 자신들이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나이 반도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주를 수용하는 것은 이집트인들에게 그들을 이스라엘의 공범으로 보이게 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이집트의 역할은 인도적 지원과 외교 협상을 넘어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스라엘과의 평화는 여전히 이집트 외교 정책의 핵심 축이다. 이집트는 무력 충돌을 감내할 정도로 이스라엘과의 양자 관계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경제적 이유나 이집트의 가스 공급의 일부가 이스라엘 수요에 의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경제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측면에서 이스라엘과의 동맹은 엘시시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는 2013년 엘시시의 쿠데타 이후 워싱턴에서 엘시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엘시시의 경제적 파트너 일 뿐만 아니라 시나이 반도에 여전히 존재하는 지하디스트 단체들과의 싸움에서 이집트의 안보 동반자이기도 하다. 레드 라인은 그어졌지만, 실질적인 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2024년 2월, 이집트 정부 소식통을 통해 이스라엘이 라파를 침공할 경우 평화 조약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이 언급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군은 2024년 5월부터 라파 국경 지역을 점령해 왔고, 이집트는 구두 답변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유엔의 틀 밖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동의 없이 이집트군이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관심하거나 무력해 보이지 않기 위한 외교?
따라서 이집트 정부의 최근 발언은 이집트의 장기적 정책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며 방향 전환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할 만하다. 이스라엘의 팽창주의 정책은 이집트의 전략적 목표, 즉 ‘2국가 해법’의 틀 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고, 시나이 반도에서 이집트의 주권과 안보를 유지하며, 마지막으로 이집트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발표에 대응하여 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하여 계획된 가자 지구 점령을 실행에 옮기면서, 이집트의 균형 유지 행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집트는 난감한 현실에 직시하게 되었다. 엘시시 정권만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집트 대통령이 군사적 대립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지만, 무관심하거나 무력해 보일 운명에 처할 것 같다. 가자지구 문제로 인한 굴욕은 독재자에게 내부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으며, 이 지역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집트가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교뿐이다. 먼저 휴전을 협상하고, 그다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이집트의 가자지구 복귀가 요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집트는 외교적 협상을 넘어 가자지구 문제 해결에 진정으로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