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정점
우크라이나 전쟁은 19개월 동안 격렬하게 진행됐지만 아직까지 힘과 수단에서 결정적인 불균형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전쟁 발발 며칠 안에 항복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우크라이나에게는 희소식이고, 크름 반도 2.0을 계획했던 러시아에게는 전례 없는 당황스러운 소식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찰과 작전 지원 측면에서 러시아 정보국의 일련의 실패의 결과이다. 독재적인 방식의 정보 관리와 오픈 소스 크라우드 소싱과 같은 현대적 전술 현실에 대한 러시아의 저항과 같이 일반적인 오류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언급을 하였지만, 러시아의 기본 전략 정보 자산의 전반적인 약점을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의 경우, 충성스러운 협력자 네트워크인 러시아 정교회와 특정 고급 사이버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빠른 항복을 받아 내기 위한 기반을 준비하는 데 핵심이었다. 그런데 8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처음 개입한 이후 이러한 모든 것들이 정점에 도달했다.
공격의 정점은 클라우제비츠의 잘 알려진 군사 개념으로 방어자의 균형추 행동과 그에 따른 공격자의 초기 우위 상실로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균형을 묘사한다. 이러한 균형점에서 공격자는 여전히 방어를 잘할 수 있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을 계속하면 패배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러시아 교리에서도 동일한 법칙이 은밀한 전장에 적용된다. 이 은밀한 전장에서는 한 행동 주체의 진정한 목표, 수단, 방법이 노출되면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작전 환경과 적의 대응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보 작전은 자연히 공격자의 전략적 목표에 역효과를 낳게 된다.
크름 반도 합병은 러시아의 전략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비밀 수단을 성공적으로 배치한 사례였다. 러시아의 크름 반도 합병 작전은 2013년 러시아가 당초의 계획이 실패해 궁지에 몰린 후 전술을 교묘하게 적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 작전의 여파로 남아 있던 러시아의 영향력 자산이 정점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분명히 전략상 변화가 필요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선언 이후 크렘린의 정치적, 전략적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모스크바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러시아는 2014년 불법적인 “돈바스 인민 공화국” 설치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에 다양한 친(親)러시아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려 했다. 지난 8년 간 2차례 민스크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러시아는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까지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려 했다. 크름 반도 합병과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권력 이양을 위해 러시아는 해당 지역 정부의 빠른(그리고 바람직하게는 무혈) 항복을 원했다. 따라서 크름 반도 유형의 권력 이양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는 것은 러시아의 침공을 앞두고 러시아 정보국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였다.
야당 인사 등 반체제 인사들을 관리하는 러시아 연방보안국 제5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다. 일부 서방 보안 관리들은 심지어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과 러시아군의 실패에 대해 러시아 연방 보안국에 그 책임을 묻는다. 러시아 군사 정보 당국은 우크라이나의 저항 가능성에 대해 결함이 있는 기초 정보를 가지고 작업해야 했다. 이러한 러시아 군사 정보 당국의 실패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성공을 좌우하는 러시아의 첩보 네트워크, 러시아 정교회 당국, 사이버 전쟁의 노후화까지 겹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
1. 협업이 없는 네트워크
우크라이나의 신속한 점령에 필요한 주요 비밀 자산은 전략적 정보를 제공하고 원활한 권력 이양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 조건을 준비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러시아 지상 첩보 요원 네트워크였다. 우크라이나 장악을 위한 토양 경작은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되었고 결국 이를 위한 지상 첩보 요원 파견을 둘러싸고 러시아 정보 기관 간 경쟁이 촉발되었다. 네덜란드 조사 전문 언론사 Bellingcat의 수석 조사관인 Christo Grozev에 따르면, 러시아 국내 담당 보안국, 특히 군사 정보국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광범위한 암약 첩보원단을 설치하기 위해 경쟁해 왔다. 암약 첩보원을 이용해 러시아 연방 보안국과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은 우크라이나 정치인, 활동가, 보안 관계자 뿐만 아니라 사법부, 언론인, 전(前)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야누코비치의 부하를 표적으로 삼았다.
2014년까지 러시아의 영향력 있는 대리인들은 정치적 분열, 취약한 제도, 높은 부패 문제를 안고 있는 크름 반도와 돈바스 정부를 빨리 항복하도록 하기 위한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에스토니아 군사과학 아카데미 연구원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가 성공을 거두게 된 핵심 요소로서 러시아 파괴 공작원들의 체계적인 공황 확산과 선전을 들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선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막대한 사상자 발생 소식과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 뉴스를 수반했다.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러시아 정보 장교들과 함께 이러한 정보 작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 정보 장교들은 선전을 전문으로 하는 언론인들과 함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와서 우크라이나 저항군에 불리하도록 전황을 조작한다. 즉, 돈바스 지역에서 물리적 대결이 시작되면서 그 지역은 철저하게 파괴됐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결국 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 없이 이 지역이 완전 항복하도록 설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몇 주 전 크름 반도에서 돈바스 지역과 유사한 시나리오가 전개되었는데, 친(親)러시아 협력자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에서 속임수와 빠른 사건 전개가 가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례 없는 군사 작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휘장과 배지가 없는 러시아 군대가 등장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방첩 부대가 상황을 진단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졌다. 이 지역 민간인들이 경험한 혼란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러시아의 비밀 작전은 러시아인들이 침투하여 매수한 현지 경찰, 보안 기관, 정계, 사법계 인사들의 협력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친러시아 협력자들이 제공하는 효율적이고 시기적절한 정보 덕분에 러시아군은 크름 반도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를 신속하게 장악하고 기만 작전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풀뿌리 저항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크렘린이 2022년에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은 크름 반도에서의 성공이 매우 호의적인 정치적 상황과 다른 작전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접근 방식의 참신성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인간 정보원을 활용한 러시아의 기만 작전은 2014년에 정점에 도달했다. 당시 러시아는 이러한 작전을 부인하는 듯 했지만, 반대 측 보안 커뮤니티는 러시아 작전의 다양한 요소에 집중한 결과 크렘린의 은밀한 방법이 노출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 작전의 설계자 이자 정치 기술자인 Vladislav Surkov는 그의 보좌관들이 Surkov의 개입을 필사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름 반도 합병 직후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Surrkov의 부주의한 행동을 단순한 허세로 해석했다.
비밀 작전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성공적인 군사 개입을 위한 러시아의 전쟁 게임 계획은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정보 실패를 이후 자세히 조사해 보면, 러시아의 정보 자산 네트워크의 역할은 우크라이나를 마비시키고 우크라이나 관리들로 하여금 친러시아 노선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전쟁 게임 계획에서 다음 단계는 우크라이나의 국익에 제대로 봉사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키는 것이었다. 시위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체계적으로 유포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되며 또 그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제공할 수도 있다. 2014년 크름 반도 합병을 위한 작전과 유사하게, 지상에 있는 러시아의 첩보 요원들은 러시아군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할 때까지 분쟁 지역에서 친러시아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 유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의 지상 첩보 요원들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군과 러시아 연방 보안국이 계획한 꼭두각시 우크라이나 정부 구성원의 물리적 통과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의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이자 2016년에 영입된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 Andriy Derkach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Derkach와 그의 조수 Igor Kolesnikov는 러시아 전체 첩보 네트워크의 중심에 놓여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최종 준비 단계와 초기 실행 단계에서 다수의 실수가 일어나 조기에 좌절이 예고되었다.
• 첫 번째 좌절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2020년 Andriy Derkach가 제재를 받은 것이다. 대규모 시위를 유발하고 우크라이나의 방첩 부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 이외에도 Derkach는 우크라이나 원자력 생산과 관련된 위험에 관한 허위 정보 유포를 주도해야 했는데, 이 모든 것들은 그가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후 실현되지 못했다. 영국과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전복시키려는 러시아의 계획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전략적으로 기밀 해제했던 시기는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몇 주 전이었는 데 이 때 러시아가 의도한 심리 작전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놀랍게도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Derkach의 첩보 네트워크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침공 초기 Derkach의 첩보 네트워크 자금의 핵심 관리자로 확인된 Kolesnikov를 구금하여 이를 무력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 두 번째 좌절은 첫 번째 좌절로 부터 부분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심리 작전이 공개되자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고 결국 단호한 국제간 연대가 만들어졌다. (비록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러시아 공격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더욱이, 러시아의 침공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국내 여론은 한결같이 유럽 연합과 나토 가입을 선호했다. 이것은 사회적 결속력과 국제적 지지의 부족이 더 이상 악용할 수 있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되었다. 2014-15년과는 달리 서방이 개입할 것이라는 신호도 나왔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 보안국은 잠복 첩보 요원을 담당하는 전(前)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보좌관이 주도하는 자체 여론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연방 보안국은 여론 조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무장 개입을 지지한다고 해석하였다.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들이 설명했듯이,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인 군과 시민사회 조직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의 첩보 네트워크에 의해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전장에서의 러시아의 성공은 2014년과 유사한 영향력과 전환 전술에 의존했다. 그러나 2014년 때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러시아군은 분쟁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보국을 도와 러시아군의 작전을 방해하는 우크라이나 지역 주민과 맞닥트려야 했다. 따라서 2022년에도 2014년의 방법과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역효과만 나는 일이었다.
• 이로 인해 세 번째 좌절이 발생했다. 즉,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의 하급 첩보원과 정보원의 충성심에 의문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러시아 연방보안국의 강점은 첩보 작전을 크게 확대하고 “큐레이터 시스템”을 구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큐레이터는 약 5-10명의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협력자들을 관리하였다. 친러시아 협력자들을 포섭함에 있어서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만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2022년에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포함되었는 데 그 중에는 우크라이나 군무원도 있었다. 포섭 인물은 유연하고 임시적이며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해서 모집되었는데, 때로는 이들의 직업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그 결과 이들의 자질과 충성심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 예비역 소장인 Viktor Yahu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있는 확장된 러시아 첩보원 네트워크는 자체 구조로 인해 타락되었다. 첩보원들은 동지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첩보결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심리와 책임감에서 상부의 의사결정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를 러시아가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뒷받침하도록 상부의 입맛에 맞도록 재단하였다. 2014년 크름 반도 합병의 성공으로 얻은 푸틴 대통령의 총애받는 정보 기관으로서의 지위 또한 자신의 경력을 진일보시키는 방법은 크렘린이 미리 결정한 정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던 큐레이터 내부의 세습주의와 연고주의를 심화시켰다.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큐레이터들이 모집한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친러시아 협력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큐레이터에게 협력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들 친러시아 협력자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을 결코 지지한 적이 없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관련하여 Christo Grozev는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이 친러시아 협력자들 사이에서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실행해야 했던 자산의 주목할만한 예를 제시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러시아의 첩보원 네트워크의 구조와 운영 방식은 2014년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과 지역 사회 모두 아무런 저항 없이 러시아에 항복하도록 그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경험한 모든 좌절을 종합해 살펴보면 명확한 그림이 나타난다. 일단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면 기능하는 첩보원 네트워크가 잿더미로 변해 그 수가 줄어들었다.
2. 믿음이 없는 교회
러시아 종교학자 Sergey Chapnin에 따르면, 친러시아 협력자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교회와 점점 닮지 않은 사실상의 국가 기관인 러시아 정교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다면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먼저 전략적 차원에서, 그 다음에는 전술 운영 차원에서 영향을 미쳐 조기에 그 영향력이 정점에 도달하는 러시아 국가의 자산이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제국주의 개혁 이후 러시아 정교회는 공식적으로 탈정치화된 국가의 확장이라는 특별한 지위에서 그 전략적 중요성을 획득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이 러시아 정교회를 부흥시키고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NKVD) 요원으로 정교회 성직자를 모집하면서 세습적, 연고주의적 보안 구조가 확립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소련 연방 붕괴 이후에도 살아 남았다. 현재 러시아 정교회의 지도자인 키릴 총대주교는 계속해서 교회와 국가 간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를 깊이 살펴보면 1992년에 러시아 정교회는 공개 담론을 통해 러시아 전투 군인들을 성인(聖人)으로 찬양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전쟁 상황에서 조국을 위해 집단 죽음마저 감당할 수 있는 자산만큼 유용한 자산은 없다.
그러나 크름 반도 합병 직전 상황은 러시아 정교회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합병 작전의 주요 설계자인 Vladislav Surkov가 유출한 이메일에 따르면, 러시아 정교회가 자신의 중요한 전략적 임무 수행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크름 반도 합병을 힘의 과시가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크렘린이 우크라이나 일반 대중의 정서를 “유라시아”쪽으로 옮기기 위한 도구로 러시아 정교회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다양한 선전 캠페인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정교회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유럽연합과의 통합을 선호하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의 전반적인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한 사회적 권위를 유지했다. 러시아 연방 보안국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도 우크라이나 인구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 정교회를 여전히 높이 평가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 대한 정보원 침투로 러시아 정교회는 1990년대 이후에도 러시아 첩보 작전의 주요한 위장 조직으로 남을 수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은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에 “종교적 민족주의” 정치 분파를 육성하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두 국가 간 고유한 종교적 통합을 촉진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소유권 주장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도전받지 않는 제도적 권위를 활용하여 러시아 정교회는 크렘린이 여러 선거 주기에 걸쳐 우크라이나 의회에 친러시아 대표가 계속 선출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가능케 했다.
분열된 우크라이나의 정치 및 종교계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전략적 영향력은 2014년 크름 반도 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최고조에 달했다. 러시아 정교회가 처음 공격을 받고 러시아가 크름 반도를 합병하면서 그 영향력은 정점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개입을 ‘우크라이나 내전’속 종교적 분쟁으로 묘사함으로써 러시아 정교회는 비난을 피하고 거리두기를 할 수 있었다. 창의적인 전략적 대응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크름 반도 합병 후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우크라이나 일반 대중의 의문이 커지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에 큰 타격이 가해졌고 결국 2019년 우크라이나에 있는 정교회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이것은 러시아 정교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왜냐하면 러시아 정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의 정교회 국가”신화의 유지였고 이 신화가 우크라이나를 통제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이 핵심 전략이 크름 반도 점령 이전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고 크름 반도 합병 후 그 전략은 완전히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
정치적 전략 이외에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데 필요한 군사 작전에서도 역할도 수행했다. 예를 들어, 2014년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돈바스(Donbas)지역의 분리주의 대원들 사이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고, 또 종교 시설 내에서 고문실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뚜렷한 정교회 정체성을 가진 준(準)군사조직인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전쟁에서 나름 역할을 하였고, 특히 현장 지리에 익숙한 “카자흐” 부대의 전쟁 참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전쟁이 진행 중인 와중에 에스토니아 해외 정보국은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지상 첩보 네트워크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성과가 저조한 첩보 네트워크와 비교할 때 가장 가치 있는 지상 첩보원(HUMINT)를 제공한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크렘린에 반대할 권한을 가진 종교 기관으로서의 러시아 정교회의 특별한 지위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는 소셜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하고 전반적인 상황 인식을 수집하는 데 가장 유리한 입지를 이룩할 수 있었다. Christo Grozev 역시 러시아 정교회 인사들이 실제 적대 행위 실행을 돕는 신뢰할 수 있는 친러시아 “첩보원과 사실상의 군인 집단” 을 구성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2014년에 했던 그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은 다시 러시아 침략자들을 홍보하고 비협조자들을 러시아 점령군에 보고하는 가장 중요한 지상 첩보 요원 중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지역 커뮤니티 관리 임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초기 단계에서 최대치에 이르렀다. 따라서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했다는 것을 더 이상 부인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재임 중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로 부터 탈퇴한 이후 러시아 정교회의 지위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악의적인 러시아 첩보원 네트워크로서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고 러시아 정교회 추종자들 중 남아 있는 우크라이나 애국자들을 모욕할 것이라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정치적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상대적인 면책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반격 와중에 러시아의 전쟁 범죄가 밝혀지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더 이상 자신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고 러시아 정교회와 교회 인사들은 체계적인 표적의 대상이 되었다. 작전을 위한 자산으로서 러시아 정교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비생산적이 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우크라이나 방첩부는 곧 러시아 정교회의 물리적 자산을 압수하고 모든 의심스러운 러시아 정교회의 문서 등을 언론에 공개했다.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을 러시아 첩보요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공식적인 충성을 다짐하는 그런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정당성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3. 효과없는 공격
우크라이나의 현지 정서를 만들어내고 러시아의 군사 공격을 보완하는 데 중요한 최종 자산은 우크라이나의 중요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 국가가 지원하는) 사이버 공격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에 속한 사이버 부대 중 하나인 “Sandworm”이 사이버 공격 의 주도했다. 각종 뉴스와 정부 웹사이트를 해킹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 뒤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 점령 당국에 항복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의 사이버 전략은 2015년 12월 우크라이나 주요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민간인이 장기간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이버 공격은 침략을 이겨내고 시민들을 부양해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역량에 대한 우크라이나 사회의 신뢰를 약화시키려는 또 다른 고전적인 시도였다. 외부 관찰자들에게 있어 Sandworm의 공격은 이전의 파괴적인 사건 보다 한층 강화된 공격이며 은밀한 사이버 캠페인을 통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최초의 성공적인 파괴 행위였다. 서방은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러시아 사이버 공격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러시아의 놀라운 기술적 역량에 어리둥절해 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전복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한 불길한 선례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예시되었는데 한 외부 관찰자는 적대적인 외국 행위자로부터 전력망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2015년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은 Sandworm 공격의 정점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국제적인 관심 속에서 빠르게 회복되었다.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은 처음에는 법적 문제를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럴듯한 부인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매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의 약점을 공격했다. 이론적으로 볼 때,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그 시점에서 후퇴 또는 전략상 변경이 필요했다. 그러나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은 공격을 통한 정찰, 즉 공격을 통해 공격 대상의 능력과 잠재적인 대응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사 제어 유형의 공격을 가했다. 우크라이나가 그러한 공격에 저항하거나 대응할 수 없음을 목격한 Sandworm은 이후 간헐적으로 사이버 공격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 없이 똑같은 사이버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민간 기업과 기타 외부 기관이 우크라이나 측에 가담하면서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2022년경 마이크로 소프트(Microsoft)와 같은 유능한 민간 회사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간 내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선제적으로 개입하여 우크라이나에 실시간 지원을 제공했다. 마찬가지로, 스타링크 통신 기술은 우크라이나의 지휘와 통제 시설을 방해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좌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시민 저항군의 생명선이 되었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기증된 서구의 기술은 우크라이나군이 정교한 정보 수집 및 화력 지원 작전을 가능하게 했다.
두 가지 주요한 사건 발생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 첫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단계에서 Sandworm은 군사 통신 제공업체인 Viasat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디지털 인프라에 대규모 와이퍼 공격을 감행했다. 이전 플레이북에서와 마찬가지로 Sandworm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의지를 약화시키고 모든 수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목표물에 대한 중대한 전술적 타격이 가해졌지만, 계획대로 우크라이나의 사회적, 군사적 사기를 떨어드리는 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은 일반 대중의 정보 지능 가치를 높여 사회적 회복력을 더욱 강화했다.
• 둘째, 2015년의 경험을 통해 확신을 얻은 Sandworm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몇 달 만에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또 다른 야심찬 사이버 공격을 시도했다. 목표는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전력 공급을 끊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5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의 민간 업체들이 제공한 지원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이 치명적인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더욱이 공격 소프트웨어가 2015년 공격과 유사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무력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인프라가 초기의 충격적인 공격을 통해 개선된 이후 크게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의 사이버 공격 방식을 이해하고 Sandworm의 초기 공격을 활용하여 조용한 사이버 전장의 우위를 확보했음을 보여주었다.
결론: 공통분모
러시아 정교회 지도부인 Andriy Derkach와 Sandworm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크렘린의 비밀 첩보 작전 선반에 있던 제품들이었는데 그 유효 기간이 거의 10년이나 지났다. (비록 우크라이나를 신속하게 항복시키려는 러시아의 숨겨진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자주 등장할 수는 있지만) 2014년 우크라이나에 있는 영토의 획득과 우크라이나당국으로부터 정치적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한 러시아의 비밀 첩보 자산은 성공적으로 활용되었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에는 완전한 전략적 실수로 끝이 났다.
세 가지 전략적 자산의 조기 정점 도달은 그러한 실패 결과를 낳은 하나의 원인이다. 크름 반도의 성공적인 합병과 돈바스의 불안정화 이후 러시아 연방 보안국은 우크라이나 작전을 확대했지만 2014년 러시아의 승리에 기여한 러시아 첩보원의 충성심과 우크라이나 일반 대중의 친러시아 감정은 2022년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의 첩보 활동은 현장에서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모두 노출되었고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외부로 부터 지원을 받고 두 가지 유형의 러시아의 전복 공격에 대한 회복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동안 러시아 연방 보안국과 러시아군 총참모 본부 정보총국은 러시아 정교회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러시아 정교회는 2019년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분열과 러시아 정교회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점차 모든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편, 사건의 변화를 보면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 도구와 이론은 크름 반도 합병 이후 우려했던 만큼 그다지 정교하지도,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영향력 자산과 비군사적 전복 시도가 소진되어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현재 진행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바이오 에너지원과 하드 파워에 더 많이 의존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성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다소 편향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논문에서 성과가 아닌 정보 실패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러시아가 해외에 있는 다른 국가의 민주적 정치 과정에 성공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폭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이외의 나라에서 몇몇 러시아의 비밀 자산이 정점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핵심 질문은 크렘린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략적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필요한 구조적 개선에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지의 여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