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위기(YK)의 구조는 1990년 5월 예멘 아랍 공화국(YAR)과 예멘 인민민주공화국(PDRY)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단일 국가로 통일된 이후 형성되어 단계적으로 발전했다.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이념을 가졌지만 역사적, 문화적, 민족적 공동체를 공유하는 두 나라의 정부와 군대가 서둘러, 그리고 충분한 준비 없이 하나의 통일 국가로 통합하는 과정은 주요 국제 정세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었다. 국제 체제의 변화, 소련의 붕괴, 그리고 걸프 전쟁 이후 미국과 걸프만 군주국들은 신생 국가인 예멘에 제재를 가하고 약 100만 명의 예멘 이주 노동자들을 추방시켰다. 그 후, 정치적 이슬람 세력은 이 지역 전역에서 더욱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예멘 아랍 공화국(YAR)과 예멘 인민민주공화국(PDRY) 두 나라는 사회적·정치적 문제의 무거운 짐을 안고 통일을 이룩했다. 통일이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을 만들어내고, 예멘 인근 마리브와 샤브와 주에서 발견된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 수출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확보하여 현대화를 가속화하며,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민주적 제도, 다당제, 그리고 신생 국가 헌법에 의해 도입된 최초의 대통령 직접 선거는 야르(YAR) 시대의 보수 연합 세력의 재집권을 막지 못했고, 석유 매장량도 통일 국가 성공을 재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4년 예멘 인민민주공화국의 옛 집권당인 예멘 사회당(YSP)을 물리친 지 불과 몇 년 만에 국민회의당(GPC)와 이슬라흐(Islah)의 동맹은 빠르게 상호 적대 관계로 변질되었다. 이슬라흐의 이슬람 세력(예멘 무슬림 형제단 분파)이 주도한 종교 개혁은 살라피즘 확산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투쟁의 도구가 되었다. 이 종교 개혁은 국가 안보 부문을 직접 감독했지만, 이슬라흐에게 교육 및 주요 입법 기능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1947~2017) 정권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 개혁은 예멘 내 긴장을 고조시켰는데, 처음에는 남부의 샤피이 전통과의 충돌이 발생했고, 그다음에는 북부의 자이디 관행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이슬라흐의 감독 하에 종교 대학(마히드 일미야)의 네트워크를 통해 급진적인 살라피주의가 공격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지역 사회는 공식적인 정부 정책으로 여겼다. 살라피즘의 확산은 예멘 사회와 국가 간 거리를 좁히기는 커녕 더욱 넓히는 데 공헌했다. 사회, 경제,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은 예멘 역사상 전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전통적인 수니파-시아파 분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예멘은 오랫동안 신학과 법(아키다와 피크)이 유사한 두 이슬람 학파, 즉 샤피이파(인구의 약 60%)와 자이디파(약 40%)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은 이러한 긴장 상황을 정통 예멘 전통에 뿌리를 둔 정통 이슬람과 깊은 분열을 야기한 외래 급진주의 타크피리파의 충돌로 보았다.
이러한 갈등의 여파는 예멘 남부에서 “남부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예멘 공화정과 남예멘 공화정이 통일 이전에 추진했던 통합 예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대체했다. 이 개념은 “남부 민족주의” 이념의 근간이 되었는 데 이 개념에 따르면, “남부” 사회는 “선진적” 사회이고, “북부 또는 예멘” 사회는 “후진적”이고 부족 지향적이며 근본주의적이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2009년 이래, 남예멘 분리주의 운동인 “히라크”(평화로운 남부 운동)의 정치 지도자들은 1990년대 남예멘 국경 내에서 남부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을 “남부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겨왔다.
동시에 예멘 북부 자이디 지방에서는 “개혁가”들의 타크피르 관행이 자이디 청년들에게서 남부와 비슷한 방어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9세기부터 자이디의 거점이었던 사다 근처 담마즈에 있는 국제 학교 다르 알-하디스의 살라피주의적 개종에 맞서, 자이디 지식인 엘리트들은 이슬람에서 예멘인의 역사적 역할을 찬양하는 “샤바브 알-무민” 운동을 만들었다. 이 운동은 사다 지방 출신의 전 국회의원인 사이이드 후세인 알-후티(1959~2004)가 이끌었는데, 그는 2001~2002년에 “후시즘”으로 알려진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이슬람의 기반을 마련하는 강연을 했다. 그는 신학과 정치 이론을 혼합하여 무슬림 세계의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는데 그 뿌리는 자이디 신학에 있다. 영적 지도자인 알람 알후다가 이끄는 “쿠란의 길”이라는 사상은 다양한 수니파와 시아파 정치 운동의 사상을 결합하고 예멘 민족주의적 요소를 더하여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단결을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이론적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이 움마 사상은 호메이니즘, 살라피즘, 무슬림 형제단, 민족주의, 그리고 다른 이념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어, 다른 자이디교도들 조차 이를 비판하곤 했다. 이 사상은 세계 정치의 문명적 불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나온 타크피르주의는 이슬람적 가치의 왜곡이자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방해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시오니스트) 정책의 도구로 여겨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후세인 알후티는 아랍-무슬림 세계가 이 사상의 정체성을 제거하여 자원을 약탈하려는 서방의 미래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멘 내 정치에서 후티 반군은 합법적인 방법만 따랐다. 그들은 종교 개혁(과 이슬라 정당)을 국가 특권에서 제외할 것과 안보 부문을 미국의 협력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후티 반군의 생각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예멘이 미국 주도의 국제 대테러 작전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살레 대통령의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정책에 위배되었다. 이 파트너십은 엇갈린 결과를 낳았는데 한편으로 예멘 사회에 반미 감정을 조성하는 동시에 예멘을 지역적으로 더욱 중요하게 보이게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살레 대통령의 친척들이 미국의 파트너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해 주었다.
2004년, 살레 대통령은 후티 반군이 사나의 모스크에서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을 저주하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구호를 계속 외치자 이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 구호는 후티 반군의 상징이자 주요 이념을 표현한 것이 되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사다 전쟁과 2004년 존경받는 지도자의 죽음은 예멘 정권을 약화시켰고, 보다 많은 부족과 다른 집단들이 후티 반군 세력에 가담하게 했다. 이로 인해 후티 반군은 강력한 반군 세력으로 부상했다. 살레 정권을 뒤흔든 2011년 평화 봉기가 일어나기 1년 전, 소위 “후티 반군 문제”는 이미 “남부 문제”에 이어 예멘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현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예멘을 ‘불안정한’ 국가로 규정했다. 많은 미국 정치학자들은 예멘을 1990년대 초 세계은행이 사용했던 용어인 “취약 국가”로 보았다. 2000년대에 예멘은 “테러 위협”의 글로벌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얻었고, 미국 정보기관의 군사적, 정치적 활동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취약 국가”라는 개념은 예멘 문제에 대한 외세의 직접적인 개입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10년 1월 런던에서 열린 예멘 국제 회의는 예멘인들이 기대했던 개혁보다는 안보에 초점을 맞췄다. 2011년 예멘은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일련의 시위 물결의 주요 타격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취약한 국가”라는 개념, 국방비 지출, 그리고 국가 주권의 약화는 모두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적 수단을 활용하는 대신 갈등을 폭력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사회와 국가, 그리고 정치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위기는 건강한 문화 체계의 자연스러운 면역 반응, 즉 정치적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이슬람은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지지를 받았고, 미국은 일반대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예멘의 안보 기관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2011년 2월 시위는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시위를 이끄는 지도부가 없었지만, 진정한 사회 혁명의 징후를 보였다. 예멘 사회의 상층부와 하층부 모두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예멘 혁명은 독특한 평화적 전환 계획, 즉 2011년 11월 23일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가 출범시킨 걸프협력회의(GCC) 이니셔티브를 따랐다. 이 계획은 사나에서 열린 포괄적 국민대화(ND)(2013년 3월~2014년 1월)에 새로운 헌법 제정이라는 과제를 부여했는데 이는 예멘 시민사회가 여전히 살아있고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는 진정한 “취약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괄적 국민대화를 조직한 사람들은 “남부 문제”와 “후티 반군 문제”라는 두 가지 핵심 쟁점에 의제를 집중시켰는데, 이는 예멘 내부 문제가 예멘의 과도기 과정에서 최우선 과제였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의 유일한 외부적 측면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가 분권화 및 연방제를 추진하는 개혁안이 제안되었다는 점이었다.
예멘의 과도기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살레 대통령이 2012년 2월 부통령이자 임시 대통령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에게 공식적으로 대통령직을 이양한 후에도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의 수장직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6월 살레에 대한 공격을 퍼붓자 이전의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던 국민회의당과 이슬라흐는 살레의 적으로 전락했다. 이 공격으로 2014년 이슬라흐의 지도부는 일반 대중의 지지를 잃었는데, 살레 자신을 포함한 하시드 부족 연합이 더 이상 이슬라흐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국민회의당과 후티 반군인 “안사르 알라”가 “보수파”와 “혁명파”를 결합한 새로운 연합체를 결성했다. 이는 이슬라흐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겨주었고, 그의 영적 지도자는 혁명을 미래의 칼리프 국가의 시작으로 여겼다. 하디 대통령은 2014년 9월 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지를 받은 “평화 및 국가 파트너십 협정”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그는 정권의 지지 기반을 이슬라흐에서 새로운 연합체로 옮기고, 2014년 12월 칼레드 바하가 이끄는 새로운 관료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이슬라흐의 승리를 예상했던 외국 세력의 베팅은 수포로 돌아갔고, 안사르 알라와 국민회의당은 정권 교체의 승자 중 하나가 되었다.
2015년 1월 말 하디 임시 대통령은 사임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위기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유엔 특사 자말 베노마르는 하디 대통령이 2015년 2월 21일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아덴으로 피신한 이후에도 2015년 3월 24일까지 평화 계획을 여전히 지지하며 새로운 동맹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 머물렀다.
이 평화 협정은 2015년 3월 극적으로 무산되었고, 많은 행위자들이 이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내놓았다. 아랍 연합이 2015년 3월 26일 예멘에 대한 군사 개입을 개시한 후 “후티 쿠데타”(정확한 날짜는 불명확)라는 주장이 공식화되었다. 이 주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통해 확정되었고, 예멘 담론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제는 예멘의 내부 문제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지역적 경쟁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예멘의 전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포괄적인 국민 대화(ND)가 상당한 효과를 거둔 반면 예멘의 분권화와 연방화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확고한 믿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났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신생 예멘 국가의 강력한 지역주의 전통은 이러한 연방 구상이 통일 대신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실질적인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개혁안 작성자들이 모방하고자 했던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2025년 중반까지 예멘 위기(YC)는 네 단계를 거쳤다. 앞서 언급된 두 단계, 즉 살레 대통령의 통치 기간과 이니셔티브 시행 기간은 내부(내생적) 단계였고, 2015년 3월 아랍 연합(AC)의 개입 이후 두 가지 새로운 단계, 즉 지정학적(군사적) 단계를 거쳤다. 예멘에서 아랍 연합군의 군사 작전은 7년간 지속되다가 2022년 4월 점진적으로 긴장 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현재의 “팔레스타인” 단계는 2023년 10월, 예멘 위기가 새로운 유형의 분쟁, 즉 초지역적 차원의 복합적 무력 충돌(지역적 요소와 세계적 요소가 혼합된)로 전환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단계의 독특한 점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PIC) 지역 상황 및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주도적인 행위 주체는 처음에는 미국과 영국이었으며, 이들은 2023년 12월 반(反)이스라엘 후티 반군의 군사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해군 연합군을 결성했고, 그 후에는 이스라엘이 주도했다.
우리는 2015년 여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예멘 위기를 “시한폭탄”에 비유하며 정치적 합의를 통한 조기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것을 기억한다. 2025년 여름까지 예멘 위기는 미해결의 내부 문제 뿐만 아니라 여러 소지역 및 지역 문제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지역 전체의 군사적·정치적 시한폭탄이 되었다. 예멘 위기가 새로운 군사적 대결 국면에 진입한 원인에 대한 논의는 후티 반군의 홍해 해상 선박에 대한 안전 위협, 이란이 이끄는 “저항의 축”의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이 그 원인이라는 주장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적 행위가 그 원인이라는 주장 등 다양하다. 그러나 예멘 위기의 구조에 대한 우리의 연구에 있어 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예멘 위기 초기 단계 분쟁이 주로 외부의 지정학적 간섭으로 인해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국면은 예멘의 내부 문제와 외부 문제 사이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제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종교적 분쟁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예멘에서 유래한 이념적 개념을 통한 이러한 연결은 인위적이지 않다. 2004년 이후 오랫동안 압박을 받아 온 후티 반군은 전쟁으로 지쳐 있었지만 여전히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국민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는 군사적 방법이 예멘 분쟁 해결에 얼마나 부적합한 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러한 새로운 지정학적 상황의 또 다른 특이한 측면은 후티 반군이 국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는 방식이 미국 행정부의 분위기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져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지역 국가들 또한 상황에 따라 이러한 낙인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난은 예멘 집권 연합의 두 번째 주요 행위 주체, 즉 헌법을 인정하고 2016년 8월 사나에 정부를 구성한 국민회의당의 핵심 세력의 지위와 관련된 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 국제 미승인 정부는 예멘 인구의 70% 이상이 거주하는 영토의 약 30%를 통제하고 있다. 안사르 알라와 국민회의당이 완전히 복구된 예멘의 국가 기구에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사실은 국민회의당이 테러리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살레 전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당은 2011년 이전 거의 10년 동안 미국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사나 정부의 최고 기관인 최고 정치 위원회에는 각 위원회에서 5명씩 총 10명의 위원이 있다. 이 위원회 의장은 항상 안사르 알라 출신이었지만, 총리, 외교장관, 그리고 일부 군사 및 안보 요직은 대부분 국민회의당 소속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16호와 관련이 있다. 이 결의안은 후티 반군이 중화기를 포기하고 사나를 떠나도록, 즉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나의 집권 연합이 후티 반군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군과 안보 기관을 장악해 온 국민회의당에 이러한 요구가 먹힐런 지는 불분명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IRG)의 지위는 러시아조차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논의 과정에서 유엔 결의안 2216호를 비난하고 투표에 부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티 반군에게 모든 무기(즉, 살레 정권 시절에 수집된 무기)를 예멘과의 복잡한 관계를 가진 이웃 국가에 위치한 하디 망명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23년 10월 예멘 위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한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시대에 뒤떨어진 유엔 분쟁 해결 체계, 2) 아랍 연합군을 둘러싼 문제점과 예멘 위기를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간 대리전으로 규정한 점, 3) 예멘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놓고 여러 외세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예멘인들의 주권은 무시된 점.
예멘 위기가 “팔레스타인” 단계로 전환되기 이전, 예멘 위기 해결을 위한 담론에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었다. 하나는 공식적 접근법(하지만 기능적이지는 않음)이고, 다른 하나는 실용적 접근법(하지만 여러 내부, 특히 외부의 강대국들이 수용하지 않음)이다. 예멘 위기의 내생적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하는 이러한 구분의 특수성은, 예멘 위기 배후에 있는 강력한 이익집단들이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한 특별 사절단을 통해 양립할 수 없는 접근법을 실행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접근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16호(2015년 4월)에 의해 확립되고, 이는 공식적으로 유엔 사절단 활동의 법적 근거가 되었는데, “후티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후티 반군이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사나의 미승인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접근법은 2015년 3월 전쟁 발발 직후 전문가 집단에서 나왔다. 이 접근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러시아 상임대표(2006-2017)인 V. I. 추르킨이 표명한 결의안 2216에 대한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며, 외국 행위 주체들의 바람보다는 예멘의 현실에 대한 이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결의안은 오랫동안 예멘 주재 유엔 대표부 대표 한스 그룬트베리에게 실질적인 역할을 맡겼으며, 두 가지 주요 요소를 포함한다: a) 예멘 내 외국의 군사 개입을 조속히 종식시키는 것; b) 유엔의 후원 하에 포용적인 예멘 형식으로 포괄적인 정치적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특히 오만 문제와 2022년 4월에 시작된 긴장 완화 체제에 “청신호”를 비췄다. 유엔 대표부와 러시아 외교부는 모든 단계에서 이 시나리오의 진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긴장 완화 체제와 리야드와 사나 간 전쟁 종식 조건 직접 협상을 위한 오만 협상은 수년간 지속된 예멘 내전의 주요 결과물이자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개혁 정책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 지도자인 빈살만은 아랍 연합군이 수행한 “결정적 폭풍” 작전의 사령관으로서 예멘 내전에 개입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개입 덕분에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체 모델과 지역적 방식을 활용하여 분쟁 종식 과정을 주도했다.
2017년부터 종교 분야에 영향을 미친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유주의 개혁, 즉 “비전 2030” 구상에 따른 사우디아라비아의 리더십 확보 전략을 저해했던 예멘에 대한 군사 개입의 위협, 그리고 이란을 포함한 지역 안보 시스템 접근 방식에서의 변화는 수정은 모두 예멘 위기의 긴장 완화로의 전환 이전에 이루어졌다. 이 논문의 지적 기반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명망 있는 킹 파이살 이슬람 연구 센터(KFCRIS)에서 2022년에 출판한 학술 논문 “예멘의 후티 운동: 이념, 야망, 그리고 안보”였다. 대부분의 논문은 다양한 서구의 학자들과 예멘 연구 센터의 저명한 대표자들이 작성했다. 그들은 “대리인”이라는 개념이 예멘 후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에 따르면, 바로 이 개념이 전쟁 기간 동안 사나의 예멘 정권과 이란, 그리고 “저항의 축” 사이의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저자들은 후티즘의 뿌리가 예멘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9·11 테러 이후 곤경에 빠진 중동의 현대 정치 상황 모두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 사이이드 후세인 알후티와 그의 형제이자 안사르 알라의 현 지도자인 사이이드 압둘말리크 알후티는 이러한 상황이 주로 이 지역을 혼란에 빠뜨린 미국의 정책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 논문의 “이러한 발견”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안사르 알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안사르 알라로부터 “적의 요원”이라는 딱지를 떼어냄으로써 양측 모두 협상 테이블에 앉아 “후티 문제”(특히)를 논의하고 예멘 위기의 해결 방안 마련에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안정적인 긴장 완화 체제는 유엔 사절단의 지지를 받았지만, 지위 상실을 우려한 여러 정치 세력(CPI)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이들은 2022년 4월, 예멘 MPP의 신임 대표인 라샤드 알 알리미가 이끄는 대통령 리더십 위원회(PLC)로 통합되었다. 미국 또한 이 지역 국가들이 예멘 정착촌 건설 계획을 주도할 것을 우려하여 이들의 불만을 지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예멘 특별대표인 팀 렌더킹(2021~2025)은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거듭 언급하며, 오만 회담을 지원한 유엔 사절단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2022년 12월 미 의회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그가 한 발언이 그 단적인 예이다: “후티 반군은 예멘 정부에 들어오는 제한된 석유 수출 수익을 현역 후티 반군 전투원들의 급여 지급에 사용하라는 막판 요구를 했다. 후티 반군이 휴전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로 인해 유엔은 10월 양측 간 새로운 휴전 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 이러한 행위는 국제 사회 전체에 대한 모욕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가 정상화된 후, 2023년 4월과 9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간 두 차례의 공식 방문이 이루어졌지만 양측 사이에는 상당한 입장차가 있었다. 협상에 대한 열정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예멘은 협상 결과와 협상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H. 그룬트베리가 2023년 12월 23일에야 준비 완료를 발표한 오만 협상의 틀 내에서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더 일찍 이루어졌다면, 예멘 위기에서 새로운 긴장 고조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거나 훨씬 덜 공격적인 형태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예멘 위기가 새로운 군사 단계로 접어든 것은 2023년 10월 7일부터 2025년 5월 6일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며, 세 단계로 나뉜다. 아랍 연합군과 사나 군 간 군사 접촉선을 따라 진행된 긴장 완화 체제는 유지되었지만, 협상 과정의 다른 모든 측면은 눈에 띄게 악화되어 인도적 및 경제적 상황은 붕괴 직전에 까지 이르렀다.
예멘 위기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지역 상황과 연계하려는 시도는 사나의 미승인 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며, 예멘의 공식 당국인 MPP의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MPP는 국제 정상회의, 아랍 연맹(AL), 이슬람 협력 기구(OIC)의 결의안을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학살을 규탄했지만, 분쟁 고조 방지를 우선시했다. 대통령직속위원회(PLC)의 많은 위원들은 후티 반군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들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홍해에서 후티반군이 이스라엘에 가한 행위가 예멘의 이익에는 해롭다고 주장했다. 특히 “예멘, 이스라엘과 전쟁 돌입”과 같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접할 때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오히려 사나의 정책이 소위 “저항의 축”과 공조하여 아랍-무슬림 세계에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새로운 단계의 시작인 미승인 정권의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예멘 위기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전투원들의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기습 공격(“알-아크사 홍수 작전”)과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로 수행한 작전(“철검 작전”)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의 철검 작전으로 가자 지구 도시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고 2025년 6월까지 팔레스타인 9%가 전쟁 희생자가 되었다. 2023년 10월 7일부터 12월 18일까지의 첫 번째 단계에서 안사르 알라의 지도자들은 미승인 사나 정권의 국내 및 외교 정책 결정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후티 교리를 기반으로 이념적 기반을 통합하는 데 있어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미 안사르 알라 지도자들의 수사(修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예멘에 대한 군사 개입을 규탄하며, 그들은 이를 “정당하지 못한 이유 없는 침략”이라고 불렀다. 공동의 적인 미국, 영국, 이스라엘을 “불경스러운 삼위일체”라 부르며 안사르 알라의 지도자들은 적대적인 신(新)중동 계획 하에 홍해에 자신의 전략적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테러행위를 자행했다. 이제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문제가 주요 화두가 되었다. “약속된 승리와 거룩한 지하드의 전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캠페인은 인정받지 못하는 사나 정권의 정책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며 내부 담론 전체를 채웠다.
시위 조직위원회가 매주 조직적으로 진행한 대규모 행진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굳건히 서겠다는 예멘 국민의 의지와 결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자리였다. 시위 지도자인 사이이드 압둘-말리크 알-후티의 공개 강연과 종교 설교가 스크린에 생중계되었다. 이는 적에 대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과 “반(反)인민적”인 아랍 및 이슬람 국가 정책을 펼친 MPP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었다.
2023년 10월에서 11월 사이, 가자 지구 주민들과의 시민 연대 캠페인에 이어 후티 반군은 하마스 조직을 향해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군사적·정치적 행동을 전개했다. 후티 반군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하는 이스라엘 선박을 봉쇄하고 이스라엘의 홍해 항구인 에일라트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여 에일라트의 작전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동시에, “수십만 명의 예멘인”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전투 훈련 과정이 마련되었다. “혁명의 지도자”인 사이이드 압둘 말리크 알후티에 대한 충성심 표명은 전례 없는 수준에 달하여 모든 계층의 군 지도부에 확산되었다.
하지만 사나 정권의 최고 정치 위원회(SPC) 의장인 마흐디 알마샤트는 자신이 이스라엘에 대해 취한 대응 조치가 가자 지구 전쟁 및 봉쇄와 관련이 있을 뿐, 다른 국가 회사와 선박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항해의 자유를 방해할 의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이 금지 조치는 전체 화물 흐름의 약 1~1.5%에 영향을 미쳤다.
2단계는 2023년 12월 18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의 기간이었는데, 본 논문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영국 해군 연합(USUKMC)이 참여한 “포세이돈 아처” 군사 작전을 다룬다. 미국 정부와 여러 파트너 국가들은 2024년 1월 3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예멘 해안에서 약 100대의 드론을 사용하여 약 10척의 화물선을 공격한 사건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이러한 공격은 전 세계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집단적 행동을 요구하는 심각한 국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 세계 해상 무역의 약 15%가 홍해를 통과하며, 여기에는 전 세계 곡물 무역의 8%, 해상 석유 무역의 12%, 액화천연가스(LNG)의 8%가 포함된다. 국제 해운 회사들은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박의 항로를 계속해서 변경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당한 비용과 수 주간의 배송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필수 식량, 연료, 그리고 인도적 지원의 운송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후티 반군에게 이러한 불법 공격을 즉시 중단하고 불법적으로 억류된 선박과 승무원을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 후티 반군은 생명, 세계 경제, 그리고 주요 지역 수로를 통한 무역의 자유로운 이동을 계속해서 위협할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2024년 1월 11일 미국-영국 해군 연합이 개시한 공습은 홍해에서의 “항해의 자유 회복”을 목표로 사나 해협으로 항해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지속할 수 있는 후티 반군의 군사력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예멘 내에서 사나 동맹(SA)에 대한 공습의 공공연한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인 집권 MPP의 입장을 난처하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군사 작전은 바이든 대통령이 사임한 후 2025년 1월 19일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유럽연합과 이 지역의 미국 파트너 국가들은 미국의 지휘 하에 작전을 수행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유럽연합의 “아스피데스(Aspides)” 작전은 상선 호위에 중점을 두었다. 걸프 지역 국가 중 바레인만이 미국-영국 해군 연합(USUKMC)의 작전에 참여하였고 미국-영국 함대에 기지와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의 사령부 지휘소를 제공했다.
미국은 유엔 헌장 제7장 51조(자위권)를 발동하여 예멘 침공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러시아 외교부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러시아 상임대표인 V.A. 네벤자(Nebenzya)는 미국-영국 해군 연합 작전의 법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강력 비판했다. 그는 2024년 1월 22일자 유엔 회원국에 보낸 상세한 서한에서 미국의 행위를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자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러시아의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홍해를 항해하는 선박에 대한 후티 반군의 위협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후티 반군에 대한 대응 조치와 가자지구 문제를 균형 있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통해 동시에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대부분의 지역 국가들도 동의했는데, 그들은 주로 홍해에서 미국-영국 해군 연합의 군사 작전이 해상 운송에 미치는 위협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수에즈 운하청의 2024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선박 운송 수입은 60% 감소하였고 이집트는 약 7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가디언” 연합 결성 이전에는 2~3% 감소)고 한다.
예멘 위기가 “팔레스타인” 단계에 집입하면서 군사 작전이 개시되었고 이 기간 동안 거의 매 분기마다 후티 반군은 해상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와 향상된 전술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미국과 영국의 상선과 군용 선박도 포함되었는데, 미국-영국 온합 해군의 공격이 시작된 후 이들 국가 선박들은 사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각국 선박이 2015년 3월 이후 설치된 모든 검문소(오랫동안 미국과 영국 해군이 통제해 온 곳)를 우회하였고 미국과 영국은 후티 반군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혐의로 이란에 위협을 가했다.
2024년 7월 20일, 이스라엘 항공대는 텔아비브에서 예멘 무인기가 폭발한 다음 날인 미국-영국 해군 연합의 “아처” 작전에 전격 합류했다.
2024년 하반기 이스라엘은 미국-영국 해군 연합과 공조하여 예멘에 대한 세 차례의 추가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예멘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월 중순까지 사나 언론은 지중해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구(이라크 저항군과 공동 공격)와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국제공항 등 이스라엘 내 다양한 목표물에 대한 92건의 공습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동안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 선박 24척을 공격했고, 미 해군을 상대로도 78건의 작전을 수행했으며, 미국 상선 30척과 영국 선박 13척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는 순항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이 포함되었는데, 그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방어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는 초음속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다수의 드론도 사용되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아처” 작전 첫해 동안 미국-영국 해군 연합은 예멘에 1,200건의 공습을 감행했다.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벌어진 예멘 반군과의 전투에서 미군이 얻은 경험은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유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최대 2만 달러 상당에 불과한 후티 반군의 드론에 대해 대당 100만 달러에서 450만 달러에 달하는 방공 미사일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면밀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2025년 1월 19일,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로 가자 전쟁은 일시 중단되었고, 홍해와 아라비아해에서의 선박에 대한 후티 반군의 공격도 동시에 중단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과 함께 “분노의 기수(Furious Rider)”로 명명된 미군의 군사 작전이 대폭 확대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22일 후티 반군을 해외 테러 조직(FTO)으로 지정한 것은 적대 행위가 중단된 시점과 맞물려, 예멘의 심각한 인도적 상황을 이유로 홍해에서의 완전한 휴전을 촉구했던 유엔 대표 H. 그룬드베리의 주장과 모순된다. 2025년 2월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촉구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2025년 3월 15일, 미국은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가자지구 휴전이 결렬되기 직전 예멘에 대한 집중 폭격을 재개했다. 워싱턴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 테러 단체에 홍해 상선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후티 반군이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이전에 본 적 없는 지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분노의 기수” 작전에 따라 예멘에 가해진 전례 없는 강도의 미국의 공격은 2025년 3월 15일부터 5월 6일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작전이 시작되자 마자 예멘에서 계획된 미군의 작전에 대한 기밀 정보가 유출되는 소위 “시그널 게이트” 스캔들이 터졌다. 이 정보 유출은 애틀랜틱 편집장 제프리 골드버그의 보도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마이크 와츠 국가안보 보좌관이 만든 메신저 채팅방에 실수로 참여했다가 이후 이 사건으로 회사에서 해임되었다.
분노의 기수 작전에는 미국 항공모함 USS 해리 S. 트루먼호가 참가했는데, 작전 중 여러 차례의 사고가 일어나 미국은 F-18 전투기 3대가 잃었다. 그 손실 비용이 무려 6,700만 달러에 달했다. 미국은 또한 2대 이상의 중형 MQ-9 리퍼 드론이 예멘 상공에서 격추되었는데, 그 대당 가격이 3천만 달러 상당이다. 예멘에서 펼쳐진 미국의 작전 비용은 약 70억 달러로 추산된다.
2025년 4월 말, 영국 항공기들이 “분노의 기수” 작전에 다시 참가했다. 5월 5일에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안사르 알라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의 거주지와 민감한 군사 기반 시설을 대상으로 첫 번째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의 기수 작전 종료를 선언한 후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5월 중순 리야드에서 열린 투자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근 몇 주 동안 미국 선박과 홍해의 항해의 자유에 대해 반복적으로 공격이 감행된 이후, 미군은 예멘 후티 반군에 1,100회 이상의 공습을 감행했다. 그 결과 후티 반군은 공격 중단에 동의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이런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후티 반군에게서 이런 말을 처음 듣는다. 그들은 강인한 전사들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우리는 그들에게 상선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무역선이나 미국의 어떤 것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우리가 공격을 중단한 것에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우리는 52일 동안 그들이 전에 본 적이 없는 천둥과 번개와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이 공격은 빠르고, 강렬하고, 단호했으며, 매우 성공적인 군사력 사용이었다. 그들은 우리 선박을 공격했다. 그들은 당신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총을 쏘았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예멘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 예멘 위기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연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멘 위기는 사나 동맹과 이스라엘 간 직접 대결로 전환되었다.
2025년 1월 13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었고, 이후 12일간의 전쟁(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격과 이란의 카타르 주재 미 공군 기지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종결됨)이 이어졌는 데 그 과정에서 예멘 반군은 이란을 지원하면서도 예멘 위기를 가자 지구 상황과 연계시키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한 이스라엘 선박 봉쇄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러시아는 군사 작전 2단계의 모든 단계에서 예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집중했다. 2025년 5월 14일, 유엔 주재 러시아 상임대표 V.A. 네벤자(Nebenzya)는 거의 두 달에 걸친 미국과 후티 반군 간의 대치 기간 동안 사망자가 200명을 넘었고 부상자도 수백 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예멘 지역에서 거의 매일 밤 공습이 이루어졌으며, 공습은 군사 시설뿐만 아니라 민간 시설까지 겨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안사르 알라(Ansar Allah)의 군사력을 제압하거나 작전을 포기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예멘에 대한 미국의 공격 중단을 환영하며 러시아 특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워싱턴이 마침내 군사적 접근법의 무용함을 인정한 것 같다. 우리는 이를 거듭 지적해 왔다… 이번 협상은 예멘 주변 지역의 긴장 완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이 예멘에 릴레이식 폭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 연합군의 예멘 군사 작전은 신식민주의식 군사 모험의 특징을 모두갖추고 있었다. 그 군사 작전은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2015년 3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예멘에는 약 25만 건의 공습이 가해져 이전 아랍연합 작전과 그 방법이나 전술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미국-영국 해군 연합이 군사적 승리에 필요한 지상 작전을 조직하지 못한 것 또한 과거와 똑같았다. 아랍연합이 긴장 완화 체제 유지를 거부하고, 조건부 합의(따라서 아랍연합의 후원자들을 위험에 빠뜨림)에만 매달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욱이 새로운 팔레스타인 단계에 진입함으로써 사나 동맹이 축적한 모든 군사력이 결국 이스라엘의 동맹국으로 행할 위험이 높아졌다. 위기의 지정학적 단계의 두 번째 단계는 완전히 완료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이스라엘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할 경우 세 번째 단계로 전환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