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gladesh Second Independence Start 5th August 2024. Dhaka, Bangladesh. The people of Bangladesh celebrate the resign of Prime Minister Sheikh Hasina and people honor the Bangladesh Army.

“두 번째 독립” 1년, 방글라데시는 어디까지 왔을까?

방글라데시 임시 정부의 수석 고문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는 2025년 8월 5일,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15년간 지배해 온 아와미 연맹(AL) 정권을 무너뜨린 학생 주도의 혁명 발발 1주년을 기념하는 “7월 선언”을 발표했다. 7월 선언은 방글라데시 국민의 미래에 대한 열망과 목표를 반영해 1971년 독립 이후 방글라데시의 정치적 투쟁을 조명하고, 그 투쟁이 어떻게 7월 혁명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이어졌는지를 강조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7월 선언은 하시나 정권이 세 차례의 부정 선거 이후 방글라데시 국민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탄압했음을 선언했는데, 이는 하시나 정권이 국민의 위임권을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지난 한 해는 방글라데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자 유누스 정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시기였다. 7월 선언은 법치주의, 인권 수호, 부패 척결에 기반한 국가 건설이라는 포부를 표명했지만, 유누스 박사의 임시 정부 1년 임기는 엇갈린 성과를 보여주었다. 임시 정부는 네 가지 중요한 과제에 직면했다. 국내 안보와 안정 확립, 7월 혁명으로 부상당하고 사망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구현, 아와미 연맹 정권의 부패한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 규명, 그리고 21세기 방글라데시의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경제적·정치적 비전 수립이었다.

열악한 취업 환경에 직면했던 학생들이 1971년 독립 전쟁 당시 자유 투사들의 후손들에게 탐나는 공무원직을 과도하게 할당한 하시나 정권의 정책에 항의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이 넘는 부패와 정부 자금 및 은행 보유고의 부실 운영으로 방글라데시는 하시나 정권 말기에 달러 보유고가 바닥나는 위기에 직면했다. 임시 정부는 처음부터 방글라데시의 새로운 경제 비전의 일환으로 침체된 경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을 제 1 과제로 삼았다.

하시나 정권 몰락 이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의 전 총재 또한 국외로 도피했다. 현 중앙은행 총재의 정책과 해외 송금 증가로 달러 보유고는 나름 개선되었다. 임시 정부의 신중한 해외 차관 정책 덕분에 2024년 12월 4분기 대외 부채는 3분기 대비 감소했다. 치타공 항을 재건하고 아랍에미리트 기업에 항구 일부를 임대하는 것은 치타공을 새로운 방글라데시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려는 의도이다. 임시 정부의 반도체 산업 확장 계획 또한 기술과 청년 중심의 경제 비전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다.

7월 혁명의 근본적인 주제는 국가와 국제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개선, 혁신하는 것이었다. 2024년 혁명 이후 방글라데시의 외교 정책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유럽연합, 중국, 파키스탄, 인도는 유누스 박사에게 즉각 축하 서한을 보냈다. 이러한 축하 메시지는 하시나가 권좌에서 물러난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학생 혁명으로 탄생한 임시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2025년 3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방글라데시 방문은 로힝야 난민 위기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방글라데시의 주도권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유엔(그리고 미국)이 지지하는 “인도주의 회랑” 설립 계획은 이 지역에서 중국, 미국, 인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만큼 적절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임시 정부 내부, 주요 정당, 그리고 방글라데시 군과의 의견 불일치는 유누스 정부가 그러한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유누스 박사는 서방 및 아시아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방글라데시의 자율권 확립에 집중하고 있다. 19명의 유럽연합 대표단과 회동한 그는 유럽연합의 비자 센터를 뉴델리에서 다카 또는 다른 인접 국가로 이전할 것을 촉구했다. 13년간 인도와의 외교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티스타 강 사태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 인도가 의료 비자 발급을 축소한 이후 유누스 정부가 방글라데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중국에 의료 시설을 설립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 심화와 국제 파트너들과의 더욱 적극적인 협력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방글라데시가 인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혁명 직후인 2024년 8월 대홍수가 발생하자 인도를 비난하는 수사(修辭)가 다시금 회자되었고, 인도와의 오랜 비대칭적 외교에 대한 불만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시나 총리가 인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하시나에 대한 인도 요청이 1년이 지난 후에도 인도 정부는 안전 문제와 방글라데시에서 그녀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하시나의 인도를 거부했다.

현재 인도-방글라데시 관계는 인도에 전략적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도는 방글라데시 내 다른 정당들과의 외교적 관계는 소홀히 한 채, 아와미 연맹과의 협력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국민의 상당수는 아와미 연맹이 인도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인식했다. 자연스럽게 하시나의 정책에 대한 방글라데시 국민의 불만은 인도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지리적 현실은 인도 북동부 지역(아루나찰프라데시, 아삼, 마니푸르, 미조람, 나갈랜드, 트리푸라, 시킴 포함)의 지속적인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와 방글라데시 정부와의 협력 관계를 추진해야 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유누스 정부는 치타공 항의 부활과 인도 북동부 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연결지었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친(親)인도적 입장 덕분에 인도는 방글라데시의 방해 없이 인도 동북부 지역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정권 교체는 인도 정부가 방글라데시와의 외교 정책을 재정비하고 아와미연맹이라는단일 정당이 아닌 방글라데시 국민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유누스 정부가 미흡한 성과를 보인 분야 중 하나는 국내 정치 분야이다. 집권 이후 유누스 정부는 의류 노동자, 관료, 보안군의 잦은 항의에 직면했다. 정치적으로도 시급한 문제에 대한 합의 도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선거 및 선거 제도 개혁 문제에 있어서도 여러 정당 간의 의견 대립, 심지어 당 내부의 분열 또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지도자들의 조기 총선 실시 압박은 유누스 임시 정부가 2026년 2월 총선 이전에 개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15년간의 아와미연맹 일당 독재로 인해 현재 국민당은 조직적으로 취약하고 분열되어 있다. 혁명 학생 지도자들이 새로 창설한 국민시민당(NCP)도 여전히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육군참모총장 와케르-우즈-자만 장군과 임시 정부 간의 의견 불일치도 문제거리다. 와케르 장군이 2009년 필카나 학살에서 방글라데시 소총대(BDR)의 역할을 주장하는 것은 정의를 요구하고 아와미 연맹 정권이 학살에 나름 역할을 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희생자 유족들의 의견과 상충된다. 유족들이 품은 이러한 감정은 방글라데시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유누스 임시 정부는 다양한 부상에 시달리고 영구 장애를 겪고 있는 7월 혁명 생존자들에게 재정적, 의료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안타깝게도 7월 선언에는 이들 생존자들의 지속적인 고통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혁명의 최전선에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월 혁명에서 여학생들의 역할 또한 선언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누락 사태는 임시 정부의 국내 정치 개혁 의제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새 방글라데시에서 이들 집단에게 정의감과 포용성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국내 환경을 보장하는 동시에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유누스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아와미 연맹은 증거가 쌓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혁명의 폭력 진압에 가담한 데 대해 어떠한 반성도 표명하지 않았다. 아와미 연맹과 학생 단체의 정치 활동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명예스러운 아와미 연맹은 여전히 ​​방글라데시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인도 망명 중에도 방글라데시에서 새로운 폭력 사태를 부추기는 선동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수도 다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아와미 연맹 ‘활동가’를 훈련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로 사디쿨 소령의 아내가 체포됨으로써 방글라데시 안보와 7월 선언의 실현 가능성이 한층 어두워졌다. 더욱이 육군 소령의 배우자가 그런 사악한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은 방글라데시 군이 2024년 혁명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7월 혁명 1주년을 맞은 지금, 유누스 박사와 그의 임시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 해결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서방 및 지역 강대국들과의 관계 개선 노력은 세계 및 지역 문제에 대한 더 많은 권한을 확보하려는 열망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 및 안보 측면에서 유누스 임시 정부는 내부 조율 및 기타 정치적 이해 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드러냈다. 유누스 박사는 자신이 현명한 정치인임을 입증하지 못했다. 하시나 정권 집권 15년간의 부패로 방글라데시 모든 제도가 완전히 퇴보한 현실은 모든 정치적 이해 관계자들의 소규모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적 수사(修辭)는 그 자체를 위한 정치적 의견 표명를 넘어서고, 또한 지지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추상적인 이념적 발언도 넘어서야 한다. 방글라데시 정당들은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직면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7월 혁명의 약속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First published in: E-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al Source
Tamanna Ashraf

Tamanna Ashraf

Tamanna Ashraf 박사는 플로리다 국제대학교 영문학과 방문 조교수이자 정치학 및 국제관계학과 겸임 강사이다. 그녀의 연구 분야는 남아시아 정치와 남아시아의 물 안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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