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 발생한 쿠데타 이후 정치 활동이 중단된 정당들은 현재 집권하고 있는 군부에 의해 활동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중단이 얼마나 지속될 지 그 심각성은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4년간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의 군사 정권은 현재 사헬 국가 연합(AES)으로 통합되어 기존 정당의 정치적 활동을 완전히 차단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 왔다. 니제르와 말리 군부는 이들 정당을 해산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으며,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2022년 9월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령이 집권한 이후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1990년대의 민주주의의 업적을 와해시키는 이러한 군부의 조치는 정치 재건과 국가 주권 추구라는 미명하에 군부가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조직적인 전략의 일환이다.
이렇게 시작된 권위주의로의 이행은 우연히 일어났거나 고립된 것이 아니다. 이는 잘 짜여진 각본에 기반한다. 아프리카에서 정당은 정치 불안정과 경제 저개발의 원인이 되며, 주로 부패한 엘리트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정치 집단을 금지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정치 안정을 어느 정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정치적 투쟁의 문화가 깊이 뿌리박힌 사회에서 실행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모델을 제공하지는 못하다. 최근 쿠데타가 일어나기 이전 사헬 지역의 민주주의 제도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다원주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 그리고 법치주의는 나름 보장되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에는 약 200개의 정당이 있고, 니제르에는 172개, 말리에는 300개의 정당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정치 지형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모든 체제에서, 그리고 사헬 지역도 예외는 아니지만, 정당은 국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선거 피로라는 맥락 속에서 바라볼 때 정당의 대량 확산은 사회 계약을 강화하기는커녕, 군부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에게 국가 권위의 무질서와 노후화의 요인으로 인식되었다.
“개발 독재”를 향하여
3월 26일, 니제르 당국은 2023년 7월 쿠데타 이후 활동이 정지되었던 모든 정당의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국가 원수인 압두라하마네 티아니 장군은 TV 연설에서 이러한 결정을 정치 재건을 위한 행위라고 정당화했다. 그는 국민 통합과 지하디스트의 테러에 맞서 싸우는 것을 언급하며 정당들이 시민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군부의 이런 결정은 국민이나 정권 교체 과정에서 배제된 구 정치권 사이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말리의 집권 군부는 4월 말 마무리된 국민 대화 이후 정치적 다원주의를 종식시킴으로써 니제르의 뒤를 따랐다. 말리의 정치 다원주의는 특히 1991년 3월 축출된 무사 트라오레 독재 정권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을 통해 어렵게 쟁취되었다. 말리의 기성 정치계는 군부의 결정에 반대하며 탄압 위협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군부 지도자 아시미 고이타 장군은 모든 정당과 정치 단체를 정지시킨 후 공식 해산시켰다.
이웃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는 2022년 쿠데타 이후 정당의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다. 올해 4월 1일, 군부 지도자 트라오레 대위는 국영 언론을 통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국이 “인민적이고 진보적인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며 “어떤 나라도 민주주의를 통해 발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개발 독재”를 암묵적으로 옹호하는 그의 이러한 주장은 현대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대안으로 군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부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말리처럼, 이전 일당 체제를 경험했던 부르키나파소는 오랜 정치적·사회적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권위주의 경향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포르 그나싱베와 시민 쿠데타
서아프리카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문은 군사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보베르데, 가나, 세네갈(세네갈은 때때로 “땀과 피”로 정치적 전환을 경험하기도 했다)과 같은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대부분의 정부는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 관행은 공고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 지도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거나 조작하고 있다. 2005년 토고를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전환한 헌법 개정 이후, 2005년부터 집권해 온 포르 그나싱베는 5월 3일, 행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내각 의장으로 취임했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 하에서 그는 소속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무기한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종종 민간 쿠데타로 묘사되는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위임 통치는 더욱이 사헬 지역의 군부 정부에 의해 선거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살아있는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중부 사헬 지역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특수성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일당 독재와 준(準)민주주의 정권을 경험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들 정당들이 오늘날처럼 위협을 받은 적은 없었다.
말리는 1960년 독립 직후 모디보 케이타의 지도 아래 일당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1968년 당시 중위였던 무사 트라오레가 이끄는 민족해방군사위원회가 주도한 쿠데타로 권위주의적 경찰 국가가 수립되었다. 일반 대중의 항의와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약화된 트라오레 정권은 1991년 3월에야 붕괴되었다. 이후 정치적 다원주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민주주의는 북부 투아레그족 반란으로 시험대에 올랐고, 민주주의의 약속을 저해하는 후진적 정치 관행이 고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니제르 군부의 위헌적 권력 장악
부르키나파소의 최근 정치 역사는 민중 봉기로 점철되었지만, 여전히 쿠데타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1960년 독립 이후 11명의 지도자가 부르키나파소 정부를 이끌었다. 그중 민간인은 단 3명뿐이었고, 권력을 장악한 기간도 15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 군부 지도자들은 군사 정권을 이끌었지만, 블레즈 콩파오레처럼 스스로를 “문명화”하려 했던 지도자들도 있었다. 말리와 마찬가지로 부르키나파소의 역사는 1966년 초대 대통령 모리스 야메오고와 2014년 콩파오레의 몰락을 초래한 대중 시위를 포함한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옹호하는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관행은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군부는 부르키나파소 정치 게임의 영원한 중재자로 남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20년간 서방 원조국들로부터 정치적 안정을 칭찬받아 온 니제르에서, 2023년 7월 26일 압두라하마네 티아니 장군이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정부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한번 니제르 정치 체제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쿠데타 사건은 1960년 독립 이후 군부가 위헌적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장악한 다섯 번째 사례이다. 니제르 군부(또는 군 일부)는 후견주의와 지대 추구가 특징인 니제르의 정치 환경을 “정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니제르의 정치에 개입하여 국가 통치에 깊이 뿌리박힌 근위대 문화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 어떤 이전 정권도 정당과 직접 대립한 적은 없었다.
불신의 중심에 있는 정치 불안정과 부패
정치 불안은 사헬 지역에서 정당의 역할에 대해 광범위한 의문을 제기할 때 주장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이론적으로 심의와 합의 형성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는 안보 영역을 포함한 위기 해결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지만, 유사 민주주의 체제인 아프리카의 민간 정권은 무장 테러 집단의 급증을 견뎌내지 못했다. 악화되는 안보 위기는 정당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영토와 국가적 뿌리를 바탕으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선거구에서도 사회적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정당은 위협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보다 심각한 것은, 불안정한 안보 정세로 인해 군부의 정계 진출이 상당 부분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의 영토 보전보다는 선거 이익에 더 관심이 있다고 일부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당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르키나파소와 말리가 쿠데타로 무너지고 광대한 영토가 지하디스트 무장 테러단체들에 의해 침식당하는 동안, 정치인들은 대통령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했고, 때로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 말리 총리 수마일라 시세는 2020년 3월 총선 유세 중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다. 사헬 지역의 군부 정부는 헌법 질서 회복을 주장하는 지역 및 국제 기구들의 압력에서 벗어나 선거가 더 이상 국가적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지하디스트 단체들이 장악한 지역을 되찾아야 할 시급한 필요성이 우선시되었다. 현재 상황에서 안보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헬 지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번영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헬 지역에 무장 테러 집단이 출현하고 확장되기 훨씬 이전부터 정당과 이 지역의 일반 대중 사이에는 단절은 이미 존재했다. 정당은 대도시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고,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농촌 지역에서는 거의 활동하지 않으며, 선거가 다가올 때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30여 개 아프리카 국가의 시민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태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이터베이스인 아프로바로미터(Afrobarometer)가 발표한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는 소수의 주민들만이 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한다. 설문 참여자의 각각 82%와 66%는 민간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익을 위해 직위를 악용할 경우 군부 독재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군사 반란 이전부터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민주주의는 이미 취약한 상태에 있었고, 사회정치적 위기가 올 때마다 허약한 민주주의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당 창당에 15만 2,500유로
그러나 정치 공간의 폐쇄와 억압에는 항상 대가가 뒤따른다. 현재 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현 군부 정권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폭력 시위의 위험을 증가시킨 뿐이다.
사헬 지역의 군부 정권이 일반 대중을 동원하여 정국을 운영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들은 정당 정치를 반드시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틀을 통제하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리에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온 권고안은 정치 주체들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들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선 1억 세파 프랑(약 15만 2,500유로)의 보증금을 정부에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말리와 니제르에서 기존 정당이 공식 해산됨과 아울러 신당 창당 조건이 보다 엄격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치 상황은 정당 없는 통치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형을 통제하려는 군부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 군부가 추진하는 포퓰리즘적 통치 방식은 정당 소멸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군부는 지지층과 직접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에서 군부는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정치 중재자, 즉 정당이나 사회운동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서아프리카의 서방 민주주의와 국제기구들이 종종 장려해 온 시민사회의 방향에 맞춰 전통 정당의 정통성을 박탈함으로써, 군은 이제 불투명한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에 의존하고 다른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다.
권위주의, 심지어 계몽된 권위주의조차도 충분하지 않다
사헬 지역의 정치적, 시민적 공간의 축소는 이 지역 민주주의의 결정적 전환점을 의미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권, 국가 통합, 개혁이라는 수사(修辭) 뒤에 숨겨진 이러한 결정들은 주로 군부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1990년대 이후 정치 무대에 오른 민간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움으로써 군부는 책임 추궁 메커니즘을 회피하고 반대 의견을 국가 통합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의 최근 역사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억압이 결코 반대 세력을 막는 방벽이 되지 못했고, 지속적인 정치 안정을 보장하지도 못했음을 보여준다. 군부는 위기의 진정한 원인, 특히 제도적 취약성, 정체성 분열, 그리고 공공 정책에서 농촌 지역의 소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이전 정권들의 몰락을 촉발했던 것과 동일한 역학 관계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무능하다는 이유로 전복시킨 민간 지도자들보다 군부 정권이 안보 위기 관리에 더 큰 효율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사헬 지역 전체에 국가의 권위가 효과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사헬 지역에서 민주주의 쇄신에 대한 야망은 허황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역에서 종종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가 지속 가능한 경제적, 사회적 진보를 보장하지 못한 반면, 권위주의는, 설령 계몽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을 뒤흔드는 다차원적 위기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중재자 거버넌스의 위기
현재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중개자에 의한 거버넌스의 위기이며, 그 한계는 이제 명백해졌다.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려면 군사 정권은 국가 재건, 기초 사회 서비스 재배치, 그리고 폭력에 방치된 주변 지역과 도시 중심지의 재연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사헬 지역의 역대 정부들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 기반한 거버넌스를 선호해 왔으며, 이는 종종 지역 변방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기반을 훼손한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중부 사헬 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이 분산되고 포용적이며 참여적인 거버넌스를 필요로 한다.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정치 행위자들을 공개 토론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이 지역을 절망, 빈곤, 폭력의 오랜 밤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